[fn사설] 중소·중견기업을 수출전사로 키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5.02 16:52

수정 2014.11.06 16:02

지난 반세기 정부를 등에 업은 대기업들은 수출전사로 세계를 누볐다. 수출로 번 돈은 공장을 짓는 데 들어갔고 공장이 늘자 덩달아 일자리가 생기면서 근로자들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온 국민이 수출의 과실을 공유했다. 삼성·현대차·LG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기업이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성공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에 공장을 지었다.
통상마찰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기술혁신에 따른 기계설비 자동화는 또 다른 고용 감축을 불렀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했다. 온 국민이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던 시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무역 1조달러 시대를 알리는 팡파르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겼다. 대신 그 자리에 양극화가 들어섰다.

박근혜정부는 1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그 타개책으로 중소·중견기업을 수출전사로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기는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한다. 중기를 키우지 않고는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박 대통령의 공약 달성은 요원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소수의 대기업을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산업기반이 사실상 전무하던 당시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50년 뒤 '중기 대통령'을 자임한 딸 박근혜 대통령은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을 택했다. 역시 시대 변화를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수출 초보 기업들을 어떻게 강력한 수출전사로 육성할 것이냐다. 현재 전체 중소기업 312만곳 중 수출 기업은 3%에도 못 미치는 8만6000여곳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의 중기가 오로지 국내 시장에서 대기업 납품 등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무역금융을 확대하고 수출을 대행하는 전문 무역상사를 활성화하는 등 중기 수출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앞서 지난 3월 중기청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글로벌 하이웨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보고했다. 중소·중견기업 300개사를 집중 육성하는 '월드 클래스 300' 사업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정도 지원만으로 중기가 수출전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과거 대기업을 수출역군으로 키울 땐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 이번에도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그 결과 박근혜정부 5년간 중기 수출만 제 궤도에 올라서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중기도 정부 지원에 기대어 감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 된다. 정부 지원은 어디까지나 분위기 조성용이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다닌 대기업들의 열정을 중기도 본받아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국내 시장에 안주해선 독일·일본·대만·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강소 수출기업의 출현을 바랄 수 없다.
사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기회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좁은 국내시장에서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느니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제값 받고 물건을 팔 수 있는 길이 수출에 있다.
중기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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