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의 민심탐방] 공약과 일자리창출/생활경제부 차장](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3/05/08/201305081640238001_l.jpg)
확실히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착찹하다. 그래도 상가에서 넥타이를 풀어 놓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얼마 전 상가에서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을 또다시 만났다. 지난 2010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발탁 기사를 쓰면서 화려한 프로필을 보고,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가 춘추관을 들러 인사할 때 확인한 '수수한 외모'에 급 친근감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휴일, 밤 늦은 상가는 조금은 한가했다. "많이 바빠요?"라고 말을 건네자 추경호 차관은 "추경 예산안 때문에 바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7일 '추경'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니 '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 같다. 직접 차를 몰고 왔다는 추 차관에게 술 대신 식혜를 따라 주자 "어때, 옮긴 출입처는 할 만해? 전용기를 못 타서 어떻게 하나"라고 물어왔다. 대답 대신 "좀 살살해요. 정권 초기라고 기업들을 너무 잡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말에 "대선공약집대로 하면 되는데…"라며 말을 아꼈다. 말을 돌려 "일자리가 늘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좀 더 앉아 있겠다는 추 차관을 뒤로하고 상가를 나서면서 '공약집'과 '일자리'라는 두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 사정기관은 물론이고 각 부처들도 경쟁적으로 기업 옥죄기에 나섰다. 그게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길인 양 의기양양했다. 기업들이 납작 엎드리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정권 초기의 활기도 사라지자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경제민주화 광풍에 대해 "대선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각 부처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뭔지 궁금할 것이다.
먼 발치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원칙주의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용주의자'라면 박 대통령은 말하기 전에 깊이 고민하고, 말하면 지키는 교과서 같은 사람이다. 이달곤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석에서 이 전 대통령이 '파도' 같은 대통령이라면 박 대통령은 '조류' 같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파도처럼 사운드와 비주얼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소리 소문 없이 묵직하게 오가는 밀물과 썰물처럼 야단스럽지 않게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재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예측가능하다. 실제 언제 밀물이 들어올지 또 썰물이 될지 분 단위로 알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나본 기업인들은 정부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명세표'를 내밀면서 일자리창출 '포인트'도 적립해 달라는 식이다. 정책이 냉온탕을 오가자 공무원들이 한다는 '복지부동'을 하고 있다. 특히 식품.유통업계는 연초 이마트 사건에 이어 최근 남양유업 사태까지 겹치면서 '멘붕(멘털 붕괴)' 상태다. 해마다 해오던 봄맞이 대대적 마케팅은 접은 지 오래고 제1국정 과제인 '일자리 창출'은 신경도 못 쓰는 처지에 몰렸다. 지난해 1700명을 채용했던 CJ푸드빌은 동반성장위원회 덕분(?)에 아직 채용 계획조차 못 잡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민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면 '오버'하기보다는 '공약집'에 뭐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읽어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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