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발표니까 뽀뽀도 하는 게 좋을까요?”
김조광수 감독(48)과 동성파트너 영화사 (주)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29)가 15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야외무대에서 결혼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9월7일 아주 공개적인 장소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김 감독은 여느 결혼 기자회견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이 설레고 떨리는 모습이었다. 다만 김 감독은 자신의 결혼이 단지 개인 경조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김 감독은 “2005년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이후 언젠가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하리라 마음 먹었다”며 “결혼식을 굳이 공개적으로 하려는 이유는 내 결혼식이 동성애자들한테도 이성애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특히 동성 결혼의 법적 인정을 강조하며 향후 지속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예고했다.
김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최초로 피앙세를 공개했다. 그는 “2005년부터 함께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며 피앙세인 김 대표를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김 대표는 “약간 떨린다. 그동안 (김 감독과) 19살 차이나는 연하라고만 소개돼 이자리가 부담스럽다”며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 친지, 지인 모두로부터 게이라는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김 감독과의 관계, 나아가 결혼식까지 지지받게 돼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첫인사를 했다.
이어 “결혼식 발표와 공개적 등장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 본인들의 자녀가 공개적 성소수자가 될 경우 받게 될 극단적인 보수 세력과 호모포비아로부터의 비방과 욕설, 상처를 원하지 않아서였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감독은 201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수상하는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공개적인 프로포즈를 했다. 오는 9월 열리는 결혼식은 그로부터 3년 만인 것이다.
김 대표는 햇수로 9년째인 김 감독과의 연애에 대해 “김 감독과 만남으로써 비로소 주변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려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에 의미가 있고 9년간 유지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하며 신뢰를 드러냈다.
김 감독 역시 “9년째 사귀고 있는데 사귀면 사귈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이들의 결혼식은 일반적 형태가 아닌 공연, 영화 상영, 전시회, 토크쇼, 세미나, 뮤지컬, 각종 퍼포먼스 등이 펼쳐지는 하나의 축제로 진행된다. 박근혜 대통령(61)과 프랑스 파리 시장인 베르트랑 들라노에(63)를 비롯, 한국 사회 유력인사들에게도 청첩장을 보낼 예정이다.
2005년 커밍아웃한 김 감독은 자신의 결혼식 축의금을 모아 무지개(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 감독은 “축의금을 가능한 많이 모아서 센터를 지어야 한다”며 “장소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일 수 있는 여러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가장 적합한 장소를 아마도 이번 달 안에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무지개센터의 롤모델은 뉴욕 LGBT센터”라며 “뉴욕 정치를 변화시킨 중요 세력이 센터에서 출발했다. 축의금을 개인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권 운동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김 감독은 결혼을 발표한 지난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입에 담기도 싫은 욕설로 혐오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큰 소리로 비웃겠습니다. 저의 결혼식을 계기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저는 가을에 행복한 결혼식을 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결혼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한편으로 (이것이) 우습다”며 “우리가 무슨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합법이 아닐 뿐이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성소수자는 존재이지 논의 대상이 아니다. 동성애자라는 존재와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견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성애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존재해왔다. 반대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천주교 신자인 김 감독은 일부 종교 단체에서 보인 반대 입장에 대해 “보수적 기독교 신자들이 마치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입장도 많다”며 “성경을 통해 얘기하는 건 사랑이다. 기독교 전체가 동성애를 죄악시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 역시 “기독교 신자들도 자신의 종교를 잘못 이용하고 배타적으로 소수자를 차별하는 자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는 목소리를 내달라”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움직임은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4개 국가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이 5월 국회에서 혼인가족법 개정 문제를 다루며 동성 결혼에 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전 세계 지도자들 역시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선언에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52), 힐러리 로댐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66)은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기문 UN 사무총장(69)과 박원순 서울 시장(57)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 내내 피앙세가 긴장하는 듯 보일 때마다 어깨를 토닥여 주던 김 감독은 “행복하게 결혼하고 이후에도 많은 이성애자 커플들처럼 싸우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알콩달콩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서로 입맞춤을 하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은 뒤 손을 잡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여느 예비 부부처럼 행복한 모습이었다.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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