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수입 대형차를 구입했던 이모씨는 새차를 주차장에만 모셔두고 있다. 차량 구입 후 한 달쯤 무렵, 도로 위에서 차량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멈춘 것. 이씨는 "당시 도로에 차량이 많지 않아 큰 사고는 없었지만 다시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업체에 항의해 차량 정비 결과 엔진에 이상이 있으니 엔진을 교체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엔진을 교체한 뒤 차량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등 이상징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이씨는 차량 교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업체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엔진 교체 외에 신차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것.
■신차 교환은 고작 3%
이씨와 같이 아찔한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피해 구제를 신청하면 신차 교환 혹은 환불이 가능할까. 16일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3년간 자동차 관련 소비자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차량 중대 결함으로 인한 신차 교환 비율은 평균 2.9%였다.
신차 교환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차량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돼도 신차 교환 혹은 환불을 해야 하는 제도적 규제가 없어 제조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소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총 978대 소비자 불만건수 중 29대(2.9%)가 신차 교환됐으며, 지난 2011년에는 1031대 중 31대가 교환됐다. 지난해와 올 들어 3월 말 현재 신차교환비율은 각각 2.7%와 3.1%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자동차 브랜드는 현대.기아차, 르노삼성차, 한국지엠, 쌍용차 등 국산차와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도요타 등 총 10개 브랜드였다.
신차 교환 이유로는 출고결함이 36%로 가장 많았으며 엔진 부품으로 대표되는 동력발생장치(22%)와 기관의 출력을 구동바퀴에 전달하는 동력전달장치(11.8%) 문제발생 등이 뒤를 이었다. 이어 수리불량, 전기전자장치, 제동장치 등의 이유가 뒤따랐다.
문제는 제조사는 법적으로 교환의무가 없다며 버티고 있는 점이다. 이씨의 경우 차량 교환을 요구했을 때 업체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권고한 조항이 이씨의 상황과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권고사항은 강제사항이 아니라 준수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차량 제조사에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 중대 결함 2회 이상 발생 시 또는 12개월 이내 동일 하자 4회 이상 발생 시 등의 경우 교환 및 환불을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는 아니다.
■"제도 보완 시급" 전문가 지적
전문가들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는 "미국의 경우 차량에 중대 결함이 발생하면 제조사에 '징벌적 보상'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보상적 보상'을 택하고 있다"며 "때문에 제조사들이 차량 결함이 발견돼도 무서워하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상적 보상이란 손해 부분에 대해서만 손실보상을 해주는 것이지만 징벌적 보상은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차량 제조사들이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꺼리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결함으로 인한 신차 교환이나 환불은 보험사가 관여하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제조사가 소비자와 직접 협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액을 제조사에서 부담해야 해 이를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차량 출고 후 엔진 등 주요 기관에 결함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들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신차 교환이 이뤄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차 교환 환불 등에 있어 수입차의 경우 딜러사와 본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국산차 한 관계자는 "피해구제 신청이 들어오면 신차 교환 여부 등 제도적으로 적법한지 등을 판단하는 법무팀으로 일을 넘기기 직전에 피해 소비자의 주변 신상을 조사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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