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대부분 ASML로부터 광 미세가공 시스템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두 기업의 결합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독과점 가능성이다.
공정위는 26일 이 같은 점 등을 감안, ASML 및 싸이머의 판매부분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기밀정보 교류 방지를 위한 방화벽을 설치하도록 시정 조치했다.
또 광원구매 및 판매 과정에서 프렌드 조항(특허권자의 무리한 요구로 타 업체의 제품생산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 원칙을 준수하며 광 미세가공 시스템 판매 때 결합당사 회사의 남용행위를 금지토록 명령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ASML은 지난해 10월 싸이머 주식 100%를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한 뒤 그해 12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이후 싸이머는 ASML의 또 다른 자회사인 코나 테크놀로지스와 합병했다. 실질적으로 ASML의 100% 자회사가 되는 수직적 기업결합이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일본계 경쟁사업자, 한국, 미국, 일본 등 최종 수요자에 대해 경쟁제한 가능성 우려 등을 검토한 결과,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칩의 경우 제조사가 시스템을 구매할 때 주요부품인 광원에 대해 특정브랜드를 먼저 선택한 뒤 광 미세가공 시스템에 장착, 납품하는 구조다.
따라서 상·하방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ASML과 싸이머가 결합할 경우 판매 독과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결합된 회사가 가격 등을 조절하면 니콘이나 캐논 등 다른 업체의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아울러 두 회사 결합은 광원을 판매하는 업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염려도 존재한다. 업계 1위 두 업체는 레이저 전문 업체 '기가포텐'으로부터 광원을 상당수 구매하는데 구매량을 축소하거나 불리한 조건 부과 등을 요구해도 기가포텐 입장에선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거래의 특성상 경쟁사업자가 장래사업계획 등 민감한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고 협조행위를 억제할 장치가 사라짐에 따라 담합도 쉬워지는 등 시장의 공정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 역시 크다.
다만 삼성과 인텔 등 강력한 구매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결합회사의 지배력 행사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고 시너지 효과로 기술발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공정위는 전망했다.
공정위는 "기술발전으로 인한 동태적 효율성 증대효과를 고려, 시정 조치한 최초의 사례"라며 "반도체 칩 제조 국내 시장에 미칠 결합회사의 시장지배력의 남용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했다"고 자평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