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일등을 넘어 일류를 창조하라] ② (4)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6.16 17:07

수정 2013.06.16 17:07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작업자가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작업자가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68년 4월 1일 경북 포항 영일만 황무지.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과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희망으로 상기돼 있었다.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수립한 지 10년 만에 드디어 첫 삽을 뜨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8년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수립했지만 국내외 회의적인 시각과 반대여론, 자금 부족 등의 영향으로 지연되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힘들게 첫 삽을 뜨게 됐지만 박태준 사장과 임직원들의 얼굴에는 세계 철강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이들의 자신감은 실현돼 포스코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포스코는 월드스틸다이나믹스(WSD)에서 매년 발표하는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사 순위에서 2010년 이후 넘버 1 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72년 10월 3일 포항제철소 주물선 고로에서 처음 생산된 열연 코일에 '피와 땀의 결정'이라고 휘호하는 생전의 박태준 명예회장.
1972년 10월 3일 포항제철소 주물선 고로에서 처음 생산된 열연 코일에 '피와 땀의 결정'이라고 휘호하는 생전의 박태준 명예회장.


■'우향우 정신'으로 '영일만 신화'

1960년대 후반, 종합제철소 건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꿈만 같아 보였다.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기 이전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은 사실상 전무. 1958년 연간 선철 20만t 생산규모의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은 자금 부족과 정국 혼란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제철소 건설 시도가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무위로 끝났다. 제철소 건설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회의적인 시각이 득세했고 반대여론은 거세졌으며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요 기관들의 의견이 잇따라 나왔다. 특히 1968년 11월 차관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중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한국의 종합제철사업이 시기상조라는 보고서를 내 우리나라 제철소 건설 계획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그러나 박태준 사장을 비롯한 포스코인들은 박 사장의 '우향우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역경을 이기고 결국 종합제철소를 건설한다.

'우향우 정신'이란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오른쪽에 있는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는 박 사장의 다짐을 표현한 것이다. 이 우향우 정신은 아직도 포스코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박 사장의 제철보국 기업이념과 소명의식, 책임정신과 완벽주의 등을 바탕으로 1970년 4월 1일 조강 연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했고 3년 2개월 만인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에서 첫 쇳물을 생산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제철소 건설을 성공시킨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영일만의 신화'로 평가하고 있다.

1973년 6월 9일 포항1고로에서 최초로 새빨간 쇳물이 흘러나오자 고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임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1968년 포스코 창립 이후 만 7년2개월 만에 첫 출선을 이룬 박 명예회장과 창립요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6월 9일은 '철의 날'로 지정돼 기념되고 있다.
1973년 6월 9일 포항1고로에서 최초로 새빨간 쇳물이 흘러나오자 고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임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1968년 포스코 창립 이후 만 7년2개월 만에 첫 출선을 이룬 박 명예회장과 창립요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6월 9일은 '철의 날'로 지정돼 기념되고 있다.


■한국경제 발전 동력

성공적인 종합제철소 건설은 한국 경제발전의 동력이 됐다. '산업의 쌀'을 만드는 철강산업의 산업 전후방 연관효과를 발휘하며 자동차, 조선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어왔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자동차와 조선산업의 '오늘'이 포스코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아니면 경쟁력 확보 시기가 뒤로 더 밀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생존 전략은 중화학공업 육성과 대외 수출 진흥이었으며 이러한 전략의 성공 여부는 철강산업의 발전에 달려 있었다.

포스코는 조업 개시 이래 품질 좋은 철강재를 공급함으로써 조선, 가전, 자동차 등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관련 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화학공업에 투입되는 기초소재를 공급해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1차 산업 중심에서 2차 제조업 중심으로,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 중심으로 변모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국내산업이 점차 고도화됐지만 철강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4.5%, 2003년 3.7%로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발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조선, 가전, 건설 등 철강 수요산업은 1980년 16.6%에서 2003년 28.6%로, 철강 관련산업 전체적으로는 1980년 21.1%에서 2003년 32.3%로 증가하여 국내 산업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사 4년 연속 1위

한국 경제의 발전동력 역할을 하며 해외시장에서도 성장을 거듭해온 포스코는 세계적인 철강연구기관인 WSD가 선정한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사로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63조6050억원, 영업이익 3조6530억원을 기록했다.
조강생산은 2789만t으로 세계 6위로 세계시장에 우뚝섰다.

글로벌 생산기지는 현재 13개국, 42개를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의 해외진출은 '제품생산은 고객사가 있는 시장근처에서, 쇳물생산은 원료가 있는 광산근처에서'라는 방침에 따라 쇳물생산은 원료가 있는 광산 근처에서 진행하고, 제품생산은 고객사가 있는 시장 근처로 진출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시장을 선점해 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