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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호세(48)가 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호세는 오는 26일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응답하라 1999’ 챔피언스 데이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21일 한국 땅을 밟았다.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팬들은 공항까지 마중 나와 열렬히 환영했고, 상동구장을 방문한 호세는 옛 동료였던 주형광(롯데 퓨처스 투수코치)과 김사율 등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999년 하면 롯데 팬들은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롯데가 한국시리즈를 치른 마지막 년도라고.
롯데 팬들에게 지난 1999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1999년 롯데 돌풍의 중심에는 ‘도미니카 갈매기’ 호세가 있었다. 호세는 박정태, 마해영과 중심타선을 이루며 각종 신기록과 진기록을 써내려갔다. 2경기 연속 만루 홈런(1999년 6월20일~21일 한화전)과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1999년 5월29일 쌍방울전)은 모두 역대 최초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호세는 2001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시즌 최고 출루율(0.503)과 63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작성했다. 두 기록 모두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호세는 화끈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부산 시민의 정서에 부합하는 타격과 쇼맨십을 선보였다. 그는 1999년 0.327의 타율과 3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의 선봉에 섰고, 롯데를 드림리그 2위에 안착시키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7전 4선승제로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시 롯데는 4차전까지 삼성에 1승3패의 열세에 놓여 패색이 짙었다. 5차전에서도 9회초까지 3-5로 뒤져 한국시리즈행 티켓이 거의 삼성 쪽으로 가는 분위기였다. 이때 호세가 해결사로 나섰다. 호세는 9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삼성 마무리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역전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터뜨렸다. 극적인 승부가 연출된 사직구장은 용광로같은 열기로 가득했고, 기사회생한 롯데는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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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롯데 자이언츠> |
6차전에서 달아나는 투런포로 팀 승리를 견인했던 호세는 7차전에서도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팀 분위기를 북돋웠다. 팀이 0-2로 뒤진 6회초 추격의 솔로 홈런을 터뜨린 호세는 그라운드를 돌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그때 사고가 터졌다. 홈런을 친 뒤 3루를 돌던 호세에게 관중이 물이 담긴 물통을 투척한 것. 이때 호세는 한 번 참았지만 홈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자신을 향해 컵라면을 던진 관객의 모습을 본 뒤에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호세는 배트를 들고 나와 1루 관중석으로 던졌다.
이 모습을 본 심판진은 호세를 향해 곧바로 퇴장 명령을 내렸고, 계속되는 오물 투척에 도저히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롯데 선수단은 경기 보이콧을 하며 강경 대응했다. 주심의 설득으로 인해 가까스로 경기가 재개된 상황에서 롯데는 9회초 임수혁의 투런 홈런으로 5-5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1회 김민재의 천금같은 1타점 적시타로 6-5 역전승을 거뒀다. 롯데는 시리즈 마지막 세 경기를 모두 6-5 승리로 장식하며 1995년 이후 4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모든 힘을 플레이오프에 쏟은 탓에 롯데는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롯데 팬들의 머릿속에는 1999시즌 투지를 불사르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 선수들과 그 중심에서 화끈한 타격을 선보였던 호세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yl015@starnnews.com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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