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무대책에 두번 우는 일제강점 피해자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와 피해자 지원업무를 계속하기 위해 추진 중인 '재단설립'이 파경을 맞고 있다.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재단설립을 위한 공청회'가 편법논란으로 시작된 지 한시간 만에 중단된 가운데 유족회 중심의 발기인대회로 전환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의 반한감정과 보상거부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지원위원회 존속은 올해 말 끝난다.
이 와중에 지원위 업무를 이어받을 재단 설립을 놓고 지원위가 주축이 된 관 주도 공익재단설립과 유족회 중심의 민간 주도 재단설립이 충돌한 것. 특히 일제강점기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조사와 지원업무를 인수인계할 국내 대표적인 재단설립이 공중분해 직전에 몰려 일본과의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및 조사 보상 업무도 차질이 우려된다.
■일본은 뭉치는데 한국은 분열
이날 유족회가 지원회를 부정하고 발기모임을 직접 추진한 것은 그간 쉬쉬하고 대외에 공개되지 않았던 △지원위.안전행정부의 행정처리에 대한 유족회의 불신 △유족회의 재단설립 주도권 확보에 따른 행정 공백 △유족회 내부의 분란이 한꺼번에 폭발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는 이달 말 만료될 지원위의 존속기간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원위 활동은 사실상 올해 말 끝날 예정인 상황에서 같은날 서울 종로구 신문로 S타워 8층에 위치한 지원위원회 8층 회의실에서는 오후 3시부터 '재단 자문.협력위원 공청회'가 약 35명의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주요안건은 '난립 중인 유족단체 대통합방안 마련'과 '재단준비위원 5명 추가선임을 위한 방안 및 선출'이었다. 회의는 약 30분이 지나면서 최대위기를 맞았다. 박인환 지원위원장이 인사말에서 "이 모임은 공청회이며 (재단설립을 위해) 의견수렴이 어렵고 안전행정부 담당자들도 새 정부 들어 전부 교체돼 재단준비도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면서 "40여개 유족회 단체들이 통합단체를 만들어 대표성 있는 분을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전국일제강제동원피해희생자연합회 정진영 공동대표는 "제가 직접 해당 부처 등에 가봤는데 재단설립 실무는 위원회에서 하고 허가는 안행부에서 한다고 말하던데 우리가 재단설립 문의를 하면 지원위는 안행부로 가라고 하고, 안행부는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서 행정기관의 업무 떠밀기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재단설립관련 지원위의 업무 해태와 역할론에 대해서도 항의가 쏟아졌다. 사할린국내유족회 신윤순 대표는 "지원위나 안행위는 모두 재단을 만들 권한이 없다"면서 최근 지원위가 재단설립 주체에 대해 법제처에 질의한 유권 해석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지원위 이재철 공보관은 "지원위는 한시조직이라 지원위와 안행위가 협의하되 안행위에 있긴 하다"는 법제처 해석을 첫 공개했다. 그는 "그런데 안행위는 아는 게 없어 지원위에 요청한 것이며 유족회 간 이견이 많아 지원위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공 많은 재단설립
유족회는 이날 공청회를 보이콧하고 즉각 유족 중심의 발기인대회로 전환함에 따라 정부와 유족회 간 재단설립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됐다.
일제피해자보상연합회 김재천 공동대표는 "공청회를 하려면 행정절차법 38조에 따라야 하는데 관련 사항에 대해 오류와 하자 투성이였으며 통지 날짜도 개최 14일 전까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어겼는데 이게 무슨 공청회냐"면서 "우리에 대한 기망이며 단순히 안행부에 올리기 위해 추인을 받으려는 것으로 오늘 공청회는 무효다"고 불을 질렀다. 아세아태평양전쟁희생자 한국유족회 최용상 상임대표는 "우리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되며 준비위원 5명을 우리더러 더 뽑으라는 건 우리끼리 싸움 붙이려는 의도"라면서 "여기 온 사람들이 발기인 모임을 해서 피해단체 비대위를 구성하고 지원위원회는 우리를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결국 참석한 자문위원 23명 가운데 13명 찬성으로 유족회 자체로 재단설립 발기위원을 뽑아 안행부에 관련 정관을 제출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원위와 유족회 간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유족회가 발기모임을 공식 선언함에 따라 일제 강점기 피해자와 유족들을 지원할 재단 설립 주도권은 지원위에서 유족회로 넘어간 분위기다. 그러나 유족회 자체도 재단설립 방식을 놓고 찬반양론으로 분산된 데다 지원위원회와 인허가권을 쥔 안전행정부가 이를 용인하지 않을 태세여서 일제시대 피해 유족사회에 파문이 일 전망이다.
국회 일제강점기 인권피해문제 대책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재단 설립 지연문제와 관련, "재단을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정부 다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양국 정부도 재단에 기여를 해야 하며 당시 강제동원하고 수탈했던 기업들을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기업들도 피해자들을 위해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는 식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조창원 김미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