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노무현 대화록’을 읽는 황당한 마음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3일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오전과 오후 4시간 동안 진행된 대화는 양측이 모두 녹음채취한 후 대화록으로 작성했다. 그 후 국가정보원은 주요 부분을 뽑아 발췌록을 만들었다. 이 발췌록이 언론에 부분적으로 보도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이 커지자 여야 모두 대화록의 공개를 요구했다. 다수 여론도 진상을 알려면 공개해야 된다는 데 찬성했다. 이 같은 배경 아래서 국가정보원은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의원들에게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발췌록을 전격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25일 아침 언론에 대서특필된 남북정상 대화록을 읽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지위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사석의 방담(放談)도 아니고 정식 회담자리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나. 확실히 노 전대통령은 그때 그 자리에서 일대 망발을 떨었다. 대화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서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NLL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NLL은 서해 휴전선의 연장이자 사실상의 국경선 개념이다. 함부로 못 건드리는 게 당연하지 그게 왜 이상한가.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판단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북핵 관련 발언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지난 5년 내내 북핵 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에서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 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왔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우리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핵 폐기를 위해 미국과 연대하여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알고 있거늘.

대화록의 부적절한 부분을 지적하려면 끝이 없다. 한국 대통령으로서 체면이 깎인 부분도 많다.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요청하자 "김영남을 대신 보낼 수 있지"라는 대답을 듣는 대목에선 쓴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2007년 10월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다. 노 전 대통령 자신도 고인이 된 지 4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그의 과오를 들춰내봤자 환멸과 분노만 증폭될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는 그럴 때가 아니다. 이제 털 것은 다 털었으니 앞날을 기약해야 한다.

여야는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소용돌이를 정치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민주당은 노무현 감싸기를 중단하고 노선 결별을 천명해야 한다. 노무현을 옹호해봤자 그에 투영된 노골적 종북·친북 이미지만 덮어쓸 뿐이다. 민주당은 천안함 폭침에 관한 당의 인식을 재천명하고, 서랍 속에서 잠자는 북한 인권법안도 통과시켜야 한다. 그 길만이 망발의 역사로 길이 남을 노무현 대화록에서 민주당이 자유스러워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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