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근혜-시진핑, 긴 호흡으로 동아시아 파트너십 구상해야”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박근혜정부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자 새 지도자가 된 양 정상의 첫 만남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든든한 초석을 놓게 되면 박근혜정부는 북핵 문제와 한·중 자유무역협정 등 현안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통일, 한·중 간 경제동반성장과 같은 중장기 사안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한·중 수교 21년의 역사는 양자관계의 비약적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눈부신 성장과 부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세계적 거인으로 성장한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는가는 한국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과거 한국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표방했지만 내실 있는 발전보다 양자 간 갈등요인이 더 두드러지기도 했다. 북한, 한·미 동맹, 불법조업, 탈북자, 역사 및 문화 소유권, 범법자 처리 등 다양한 이슈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것은 양국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하지만 장기적 협력구상이 따라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중 정상회담을 둘러싼 국내의 관심은 온통 북한 비핵화에 쏠려있는 양상이다.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핵에 대해 중국이 어느 수위의 언급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핵 문제의 중대성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의 태도는 물론 중요하다. 북한은 핵무력건설과 경제건설의 동시 추구라는 소위 병진노선을 내세우고 있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은 북한 비핵화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달 초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이론의 여지는 없었다. 한·중 간에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 북한의 탈병진노선 유도를 위해 중국의 압박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 또한 이를 알고 있으며 상당 수준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해서 북한의 미래에 대해 한·중 간 전략적 합의가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장기적 미래 모습, 더 나아가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 전략적 지향에 대해 한·중이 전략적 대화를 나누고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한·중 간 협력은 비핵화 현안에 그칠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에 대해 한·중 간 차이가 나는 것도 결국 장기적인 공통 비전이 확실히 마련되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대북 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은 우선적으로 대화를 재개해 비핵화 과정을 논의하라는 주문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 한·중이 협력하는 것과 북한의 미래에 대해 전략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논의의 수준이 다르다. 한·중 간 전략적 신뢰가 없다면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중국에 바라는 것이 북핵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중국은 한국에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중국은 동아시아의 미래 건축에서 지역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꾸준히 노력 중이다. 미국과 소위 신형대국관계를 통해 안정과 협력을 추구한다고 천명했지만 여전히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서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미·중 간의 군사경쟁은 계속되고 있고 영토 문제, 민족주의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도 높은 수위에서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한·미 동맹이 여전히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냉전의 유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추진하면서 경제적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차원의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도 중국의 동아시아 구상과 무관하지 않다. 동아시아를 이끌어가는 데 한·중의 전략적 비전이 어디까지 일치하는지가 중국의 관심사인 것이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동아시아는 한국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위협이다. 강대국들의 다툼 속에 편들기 외교를 강요당하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미래 건축을 위해 더욱 협력 지향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강대국과 함께 설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방미 중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설계에서 미국과 공동설계자가 될 것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지역전략 수준의 공동 설계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반에 걸친 내실 있는 논의가 필요하며, 동시에 정부 간 협력을 넘어서는 다층적·다면적 협력도 추진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담에 동반하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의 활동, 중국의 중서부 개발을 상징하는 시안 방문 등은 이러한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한·중 협력이 심화되고 동아시아인의 바람을 중국에 정확히 전달해 중국이 힘을 행사하는 데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국 간 신뢰에 기반해 중국만의 부상이 아닌 동아시아의 부상이 이뤄지는 초석을 놓는 한·중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