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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칼럼] 나치가 부럽다는 아소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13 04:03

수정 2013.08.13 04:03

[김성호 칼럼] 나치가 부럽다는 아소

'망언 제조기'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이번만은 단단히 혼이 났으면 좋겠다. 일본 5개 야당(민주당, 다함께당, 공산당, 생활당, 사민당)이 연합하여 아소의 파면을 요구하고 나선 게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 야당들은 "나치 개헌 수법을 배우자"는 지난 7월 29일 아소의 망언을 '나치즘을 긍정하는 해명의 여지가 없는 폭언'이라고 규탄했다. 아소의 망언은 국제적 질타까지 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뜨뜻미지근한 비판은 약과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언론들 가운데는 '비문명적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곳도 있다.
도대체 아소는 히틀러 개헌 수법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을까.

아소의 망언은 도쿄에서 열린 국가기본문제연구소 월례 연구회에서 나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헌법 개정은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 어느 날 보니 바이마르헌법이 나치 헌법으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바뀌었다. 이 수법을 배우는 게 어떤가." 아소는 바로 '아무도 눈치 못 채는 사이에' 민주 헌법을 독재 헌법으로 바꾸어버린 나치의 수법을 부러워한 것이다.

나치에게 유린된 독일 헌법의 기구한 행로는 다음과 같다. 1918년 1차 대전의 패배와 함께 독일 제국은 망하고 1919년 독일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때의 독일을 바이마르(Weimar)공화국, 이때의 헌법을 바이마르 헌법이라고 부른다. 바이마르 헌법은 1919년 8월 11일 독일 국민의회에서 공포됐다. 국민의회는 처음으로 국민주권의 원칙 아래 평등.직접·비밀선거로 선출됐다. 첫 국민의회가 열린 곳이 독일 중부의 고도(古都) 바이마르였다. 바이마르는 문호 괴테와 실러, 작곡가 리스트와 철학자 니체 등의 활동 무대였다.

독일 공화국이 수립된 이듬해 1920년에 히틀러는 '국민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즉 나치당을 결성했다. 패전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나치당은 1930년에 의회 제2당으로, 1932년에 제1당으로 성장했다. 당시 독일 국정은 바이마르 헌법 48조가 없었으면 유지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 조항은 대통령의 비상권한을 규정하고 있었다. 다당제 아래서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의회의 힘으론 통상적인 입법이 안 되니까 대통령의 이름으로 긴급 조령(條令)을 발표하면서 치안을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치는 1933년 선거에서 득표율 44%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히틀러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총리인 자신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전권위임법'을 국회 의석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바이마르 헌법 48조를 원용(援用)한 것이다. 이로써 의회는 무력화됐고 이듬해인 1934년 8월 총통제 채택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식으로 종언을 고했다. 15년도 못 되는 짧은 수명을 누린 바이마르 헌법은 그 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부터 민주헌법의 전범(典 範)으로 대접받았다.

아소는 나치의 개헌 과정이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진행됐다고 하지만 거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당시 독일인들은 패전후의 피폐와 대공황의 직격탄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지친 민심은 히틀러의 협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히틀러는 '살금살금' 악법을 만들어 갔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게 독일인의 태생적인 준법 의식이었다.

뒤늦게 히틀러 체제에 저항한 '고백교회' 창립자 마틴 니묄러 목사(1892~1984)의 회고담은 유명하다. "히틀러가 공산당을 탄압할 때 나는 가만 있었다. 히틀러가 사회당을 공격할 때 나는 사회당원이 아니었음으로 잠잠했다. 대학이, 신문이, 유대인이 공격당할 때도 못 본 척했다. 히틀러가 교회를 공격하자 목사인 나는 저항했다. 그러나 이미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는 '살금살금' 개헌의 첫발을 떼고 있는지 모른다. 우선 헌법 해석만 달리하면 '집단적 자위권' 발동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구태여 의회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욱일승천기 게양이 일상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아베와 아소의 야심은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김성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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