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노동일의 워싱턴프리즘 디트로이트의 비극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13 13:46

수정 2013.08.13 13:46



디트로이트의 비극

노동일 경희대 교수·美시러큐스대 방문교수

"신은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흉물로 방치된 디트로이트 도심 건물 벽의 낙서다. 디트로이트의 비극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한때 미국의 4대 도시 중 하나. 지엠·포드·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 회사의 본산으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과 미국의 힘을 상징하던 디트로이트. 그렇던 디트로이트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치단체 파산신청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많은 지표가 나락에 떨어진 디트로이트를 보여준다. 빈곤율 38%로 가장 가난한 도시, 2009년 '살인의 수도(murder capital)'로 선정(?)될 만큼 가장 위험한 도시, 미국 평균의 2배 이상인 실업률 등. 기업과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건물들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최근 데이브 빙 디트로이트 시장은 올해 안에 1만 채의 빈 건물 철거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돈. 철거 예산 중 2103년 부족분만 4000만달러. 계획대로 되어도 불량 건물의 13%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디트로이트 쇠퇴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과도한 임금인상 및 의료보장 요구 등 강성 노조 잘못, 자동차 회사 경영진의 안일함 및 금융업 의존 등 경영 실패 때문,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복지 탓 등 의견이 다양하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디트로이트의 비극은 산업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정보기술(IT)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인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국민 모두가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견해다.

우리 언론들도 디트로이트의 파산 소식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직된 노조, 과도한 복지, 경영의 실패 중 하나만 지적하는 것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우려가 있다. 반면 산업의 구조재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책임 회피 구실로 쓰일 수 있다. 디트로이트의 비극은 위에서 본 모든 문제의 총합이 원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정치의 실패다. 얼마 전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의 관련 기사는 시사적이다. 어감을 살려 번역하면 '디트로이트는 당해도 싸다(Detroit got what it deserved)'는 날선 제목이다. 디트로이트의 파산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 기업, 공무원 등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일면 당연하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이해관계의 조정과 고통분담의 호소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해야 제대로 된 정치적 리더일 것이다. 그러나 전 현직 시장, 의원 등 디트로이트의 정치 리더들은 반대로 행동했다.

누구도 부채를 솔직히 시인하지 않았고 자신이 망해가는 도시의 책임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금은 덜 걷히는 데도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대신 교육, 치안, 보건 등과 관련된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도시의 기본 서비스는 날로 악화되고 인구 탈출은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특히 도심 경전철 피플 무버는 낭비성 거대 프로젝트의 전형이다. 현재 피플 무버의 좌석 점유율은 10% 미만. 매년 8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의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그런데도 디트로이트에서는 1억4500만달러짜리 새 경전철이 추진되고 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요지부동이다. 디트로이트 도심을 되살리는 데 꼭 필요한 인프라라는 주장이다.

지루한 법정공방이 남아 있지만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디트로이트는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량한 시민은 분노를 삼켜야 한다. 연금은 반 이상 줄어들고 의료보험 대신 정부의 의료보호에 의존해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범죄로 얼룩진 도시를 떠나고 싶어도 깡통으로 전락한 집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는 처지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 노조, 공무원들과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 디트로이트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디트로이트가 왜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는지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여름은 해외시찰 명분으로 정치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계절이다.
이들이 화려한 도시, 관광지만 갈 것이 아니고 디트로이트를 꼭 들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