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제닉 본사 6층 강당. 매주 화요일 업무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가 되면 각 층과 인근 연구소에 흩어져 있던 임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피자와 콜라, 치킨 등으로 요기를 하며 임직원들 사이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이 회사 유현오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그 역시 보일 듯 말 듯 직원들 틈에서 잡담을 하고 있다. 외부 손님인 듯한 몇 사람도 인사를 건네더니 자연스럽게 앉아 역시 똑같이 음식을 나눈다.
그렇게 30여분이 흘렀을까. 너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정돈한다. 유 대표도 남은 음식이며 쓰레기 등을 능숙하게 분리수거한다. 대표나 직원이나 외부 손님이나 똑같다.
'하유미 팩'으로 잘 알려져 있는 화장품 연구개발 제조기업인 제닉이 매주 화요일 저녁 진행하는 문화경영 '1인 1악기 연주시간'은 이렇게 구성원 간 조화(하모니)로 시작된다. 바이올린, 플루트, 통기타, 클래식기타 등 직원들이 각자 배우고 있는 악기별로 모여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한다.
"저렴한 악기라고 소리가 나지 않는 게 아니다. 각자 형편에 맞춰 사면 된다. 나도 약간 돈을 들여 얼마 전 새것을 장만했다. 사장이 나서서 (돈을)좀 써야 되지 않겠느냐(웃음)." 바이올린을 배운 지 3년째 됐다는 유 대표가 넉살좋게 이야기를 던진다.
'1인 1악기 캠페인'을 통해 제닉이 문화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화장품 제조 기업인 만큼 회사 이념인 '건강한 아름다움'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레슨비와 첫 악기 구입 시 비용의 50%는 회사에서 지원해준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선 술을 중심으로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오기업인 제닉이 고객들에게 건강을 주는 일을 하는 만큼 음악을 통해 구성원 간 유대감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역시 이런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문화경영을 회사에 접목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유 대표의 설명이다. 음주가무 중 제닉에는 '음주'만 없을 뿐 '가무'를 제대로 갖춰놓고 있는 셈이다.
제닉의 이 같은 활동은 결코 회사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통해 소외계층을 위한 연주회도 꾸준히 개최하고 가족들을 초청한 연주회 역시 임직원들이 갈고 닦은 솜씨로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곳에 재능을 기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고 있다. 직접 몸을 부딪혀 이웃을 위한 연탄나눔 운동에 참여하는 것 역시 제닉의 구성원이면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지난 6월에는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13 코스닥대상 최우수 사회공헌 기업상'을 받기도 했다.
연주만 하다보니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래서 '1인 1 운동하기 캠페인'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게 자전거 동호회다. 지난해 탄생한 자전거 동호회는 남·여 직원이 어우러져 1년여 동안 한강, 금강, 영산강 등 총 1000㎞가 넘는 자전거길을 달렸다.
홈쇼핑 진행팀에 근무하는 입사 3년차 손영진 사원은 "(자전거가)처음엔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체력이 올라갔고 이런 활동은 회사 업무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음악이 감성을 일깨워주고 운동을 통해 활동력이 늘어나 동종 업종에 근무하는 다른 회사 친구들의 부러움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화장품 전문 회사인 만큼 제닉엔 여직원 비율이 높다. 문화경영 외에 제닉의 또다른 강점이 바로 여성 근무자들의 자유로운 근무여건이다. 출근시간 자율제와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육아휴직 등이 대표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3자녀를 둔 유 대표 역시 최근까지 10년 넘게 맞벌이 부부로 살아오면서 회사가 육아와 직원들의 가정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여실히 느꼈다.
"기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공평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고 그것이 사회적 책임이다. 좋은 사람을 뽑아 가정을 꾸리고 회사를 잘 다닐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게 바로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부가 아니겠느냐"는 게 유 대표의 말이다.
제닉은 지난해부터는 경기 광명의 중형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해 회사 직원에게 무상으로 임대를 놓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굿 컴퍼니'를 만드는 것이 문화경영이라는 게 유 대표의 지론이다. '긍정적 생각, 열정, 겸손.' 이 세 가지는 유 대표의 경영 철학이자 소신이다.
"스팩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나도 창업을 해 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기업인에게는 '모험적인 유전인자'가 중요하다.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러려면 장사를 해라. 대신 기업인은 자신의 '달란트(타고난 자질)'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 대표가 이끌고 있는 제닉은 다양한 문화경영을 통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업을 만들고 다른 기업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제닉은 올해 4월 중국 상하이시에 현지 생산법인을 완공하고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중국 등 이미 3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고 내년께는 매출의 30%가량을 해외에서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시기는 정해놓지 않았지만 국내외를 넘나들며 관련 시장에서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꿈도 서서히 만들어가고 있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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