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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옷은 스위트 홈이다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27 16:51

수정 2013.11.27 16:51

[fn논단] 옷은 스위트 홈이다

카메라를 든 청년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앞을 막아섰다. 근처 쇼핑몰에서 '패션쇼'를 하는데 일반인 패션도 인기투표를 해서 1등에겐 후한 상금을 준다고 꾀었다. 함께 가던 친구가 등을 떠밀어 포즈를 취했고 며칠 후에 휴대폰으로 놀라운 문자가 왔다.

"패션 스타를 찾아라! 이벤트에서 인기투표 1위를 하셨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까닭 없이 옷을 좋아했다. 춘하추동 교복으로 살던 시절인데도 옷은 영어·수학처럼 내 머리를 끙끙대게 하는 중요 과목이었다.


학창시절을 벗어나 사회에 입문하면서 옷차림새는 더 어려운 학문이 됐다. 마음에 안 드는 복장으로 출근한 날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고, 일에 관련된 사람을 처음 만날 땐 그 전날부터 옷 때문에 고민이었다.

배우와 생활하는 직업 탓이라 할지 모르지만 배우로부터도 배우보다 더 의상에 신경 쓰는 감독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브랜드의 노예인 명품족은 아니었다. 남이 입던 옷이라도 마음에 들면 얻어서 애지중지 입고 다녔고 지금도 내 옷장 속엔 그런 옷이 살아 있다.

나는 와이셔츠를 맨 정장 차림보다는 흰색 폴라 티셔츠 차림을 더 좋아한다. 지금처럼 초겨울에는 하얀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검은 폴라 티를 겹쳐 입는데 어찌 보면 '로만 칼라'가 돼버린다.

언젠가 그런 차림으로 가톨릭병원에 건강검진을 간 적이 있는데 복도 멀리 파파 수녀님께서 신부로 착각하고 손을 흔드셨다. 얼마나 멋진 미소와 사랑의 눈길로 힘차게 손을 흔드시던지 옷의 위력을 절감한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겨울철이면 짝퉁 로만 칼라를 입고 다니길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런 날은 수도승이라도 된 듯 내 마음 속 탐욕을 꾸짖고 꾸짖는다.

주위를 보면 1년 내내 청바지만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기도 하지만 청바지 공화국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도시나 시골에 펼쳐진 아파트만큼이나 곳곳이 청바지 입은 무리들인데 결혼식과 장례식까지 출몰한다. 편하기로 말하자면 최상일 테지만 춘하추동 같은 옷만 입고 산다면 수십년 군복 입는 군인이나 경찰과 다를 바 없고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로 옷은 나뭇잎에서 발전과 진화를 거듭했다. 직업과 계급, 격식과 예의가 옷 속에 들어있고 생각과 행동거지, 인격과 비천이 옷에서 나오고, 요즘엔 의상 테라피까지 생겼을 정도다. 나폴레옹도 말했다. '사람은 그가 입은 의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내게 있어서 옷은 집이다. 자신의 집이 아무리 화려한 저택일지라도 대문을 나와 거리에 서는 순간 그의 옷이야말로 그의 집이다. 집이 몸과 마음의 안식처이듯 옷도 몸과 마음의 안식처다. 내 옷장엔 핫바지에서부터 가죽바지까지, 판탈롱 스타일에서 스키니 스타일까지 가지각색의 옷들이 들어 있는데 옷 한 벌 한 벌을 집이라 생각하는 나로선 여러 종류의 집을 가진 사람이다.

누구나 언덕 위의 파란 집과 성 속 궁전과 펜트하우스에서 살아보고 싶고 에스키모인의 이글루와 몽골인의 게르에서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그 화려한 욕망을 나는 옷으로 해소한다. 인디언 복장에서부터 스코틀랜드의 킬트(Kilt), 인도인의 전통의상 쿠르타(Kurta)까지 이런저런 옷을 입고 싶은 욕망! 내일 나는 가죽바지를 입고 출근할 것이다.
내게 옷은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다.

이응진 문화칼럼니스트·드라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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