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 중부지방 기온이 0도로 떨어진 지난달 25일 서울지하철 4호선 노원역 7번 출구앞. 주말 사이 곳곳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체감온도가 더욱 낮게 느껴지는 월요일 아침이다.
게다가 이날따라 매서운 바람은 쌓인 낙엽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스산한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다.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가 막 지나긴 했지만 날이 밝아오려면 한참 남은 5시50분. 7번출구 앞에 한두 명씩 사람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예닐곱 명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새벽부터 무슨 일일까.
여기가 서울 동북부지역에 사는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세종시로 실어나르는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사람들이 일찍 모였다.
매일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에, 주말 동안 집에 머물렀다가 월요일에 내려가 평일 내내 세종에 머무는 사람들까지 합쳐지면서 '공무원 시계'가 다른 요일보다 일찍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날처럼 겨울바람이 새벽공기와 맞물리면서 쌀쌀한데도 추위를 피할 곳이 없어 그냥 길거리 한복판에서 10~20분가량 버스를 기다리며 보낼 수밖에 없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출근길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지난해에도 (세종을 왔다갔다하며)겨울을 보냈지만 올해도 벌써 큰 걱정이 앞선다."
출근길에 만난 한 공무원의 이 말 한마디에 일반인은 모르는 그들만의 고충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통근버스가 도착하고 한 사람씩 차에 오른다.
운이 좋은 날이면 자리가 좀 넓은 '우등'이라도 걸렸을 텐데 오늘은 일반버스다. 그나마 옆에 사람이 앉지 않는 게 다행이다.
뒤늦게 버스에 부랴부랴 오르는 이도 있지만 가뜩이나 좁은 자리에 두 명씩 앉기가 불편해 대부분은 뒤차를 타기 위해 그냥 내린다. 이렇게 45인승 버스는 나란히 있는 2개의 좌석에 한 사람씩만을 태우고 떠날 준비를 한다.
매일 편도 2시간30분 정도, 100㎞가 넘는 세종시 공무원들의 '하루 여행'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취침. 버스기사도 출발하자마자 실내등을 꺼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어느새 탑승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을 청한다. 그렇다고 깊은 잠에 들 턱이 없다. 오늘 일할 걱정에, 또 어떤 이는 벌써 퇴근길 걱정에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꿈나라에서 헤매다 버스 속도가 줄어드는 느낌에 번쩍 잠이 깼다. 귀신이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막 국도로 접어들었다. 자긴 했지만 오히려 더 피곤하다. 거기에 허리까지 쑤신다. 매일 이렇게 오간다면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임은 뻔하다. 출퇴근 공무원 셋 중 하나는 허리병이 생겼다는 게 빈말은 아닌 듯하다.
오전 8시32분. 통근버스가 뿌옇게 안개로 둘러싸인 정부세종청사 입구로 들어섰다.
운전기사는 '출퇴근하는 분들을 보면 어떤가'라는 기자의 말에 "피곤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서울~세종을 매일 오가는 공무원들은 집에서 새벽 5시를 조금 넘겨 하루를 열었지만 실상은 이보다 3시간가량이 지난 시간에서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이달 당장 6개 부처가 세종에 새 둥지를 틀면서 4800명가량의 공무원이 추가로 세종청사에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가운데 현지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 아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하는 공무원 숫자는 적어도 20~30%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이를 위해 일단 서울 강남(12회), 청주공항(8회) 등을 오가는 고속버스 노선을 신설하는 등 대중교통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이달부터 세종시에 근무하게 될 공무원 A씨는 "분양받은 아파트가 내년 말에나 입주할 계획이어서 1년 가량은 출퇴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렇다고 월세나 임대아파트 등도 구하기 힘들어 (출퇴근에)몇 시간이 걸리겠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국책연구기관으로는 가장 먼저 이달 중순 역시 세종시로 옮기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근무자들은 그나마 한시적으로라도 출퇴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케이스. 국제정책대학원이 1년 뒤에나 내려오기로 해 세종시에 미리 지어놓은 기숙사 공간이 남기 때문이다.
KDI 관계자는 "300명 중반에 달하는 정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기숙사를 신청했다"고 전했다.
출퇴근하는 것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현지에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때아닌 '기숙생' 경험도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