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꿈의 직장’ 삼성, 고급 연구인력의 은밀한 이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11 17:22

수정 2013.12.11 17:22

‘꿈의 직장’ 삼성, 고급 연구인력의 은밀한 이탈

지난달 중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센터에 A씨가 불쑥 찾아왔다. 그는 채용을 의뢰했다. 그는 외국 유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연구원이었다. 그가 KIST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최근 삼성 종기원에 있는 인력 300~400명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의 사업부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라며 "만일 사업부로 이동을 안하면 퇴사가 불가피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KIST에 채용을 의뢰한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돌아갔다.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삼성에 근무하는 박사급 고급 연구인력이 국책연구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의 석·박사급 고급 연구인력들이 KIST를 비롯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화학연구원(KRICT),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등 국책연구원으로 이직을 시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삼성 박사급 인재들의 집결체인 삼성 종합기술원의 인력은 1500여명이다. 그중 75%가량이 석·박사급 고급 인력일 만큼 '삼성의 싱크 탱크'다.

그러나 최근 석·박사급 삼성 종기원 인력 중 일부가 국책연구원으로 이탈을 시도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삼성의 싱크탱크'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삼성 종기원이 최근 전체 인력의 20~30%가량을 삼성 계열사 사업부로 이동시키는 '인력 재배치'를 진행하는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고급 인력의 이탈 현상은 '인재제일주의'와 '기술제일주의'를 경영이념으로 삼아 세계시장을 석권해온 삼성의 기술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삼성에서 국책연구원으로 이직한 A씨는 "처우는 삼성이 훨씬 좋지만 단기 연구성과 등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서 국책연구원으로 옮겼다"며 "국책연구원에서는 장시간 여유를 갖고 원하는 기초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삼성 고급 인력들이 채용을 의뢰하는 대표적인 곳은 KIST다. KIST 고위 관계자는 "최근 삼성 종기원 출신의 박사급 연구인력들이 채용 의뢰를 많이 해오고 있다"며 "욕심 나는 우수한 삼성 인재가 많지만 정원 제한과 예산이 여의치 않아 뽑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연구원으로 이직하는 이유는 삼성 종기원이 전체 인력의 50%를 삼성 계열사의 사업부로 이동시키기로 한 데 따른 인력 이탈현상"이라며 "연구만 하다가 삼성 계열사 사업부로 가면 실적 압박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업무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들려줬다.

ETRI도 삼성 고급 인력들의 지원이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ETRI 관계자는 "확실히 요즘 삼성 출신 인력의 채용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삼성 종기원이 인력을 재배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나도 예전에 해외 연구소 있다가 한국 들어올 때 알아봤을 정도로 삼성은 꿈의 직장이었다"며 "삼성에서 사람이 나오는 이유는 원천연구 비중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KRICT도 삼성 출신 인력의 지원이 쇄도하고 있다.

KRICT 관계자는 "요즘 삼성에 있다가 경력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다"며 "경쟁률이 과거 2대 1 정도에서 10대 1로 늘었다"고 말했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박지현 고민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