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사고를 버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을 했으면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고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일어나라."
두번의 사업 실패로 인한 전재산 탕진에 자살 기도까지 했던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대표이사(사진)가 재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던지는 조언이다.
오 대표는 지난 1993년 6월 23일 가족, 친척들 돈마저 끌어들인 사업이 폭삭 망하자 아버지 묘 앞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려 했다. 하지만 술이 많이 취한 탓에 수면제를 삼키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새벽에 갑자기 깨 "이렇게 죽으려고 했던 각오로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세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은 연간 34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메타바이오메드를 성장시켰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생분해성 봉합원사, 치과용 기자재, 인공뼈 등 의료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강소기업이다.
오 대표는 담담하지만 아직도 눈앞에 선한 사업 실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나를 믿어주는 긍정의 힘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1일 말했다.
그는 1985년 충치 치료에 쓰이는 재료를 만드는 미국 회사에서 관리이사로 근무했다.
당시 노사분규 문제가 심해지면서 몇 년 뒤에 이 회사는 폐업을 하게 됐다. 오 대표는 1989년 회사를 인수했다. 그러나 똑같은 노사 문제로 노조에 회사를 넘겨주고 말았다.
충치 치료 재료에 대한 시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던 터라 1990년에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관련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다. 하지만 순탄치가 않았다.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가 발목을 잡았다. 이외에도 여러 문제로 전 재산을 탕진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처음 사업에는 2억원, 두 번째 사업은 2억8000여만원을 투자했고 모두 날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자살까지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7명의 친한 동창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5000만원을 건넸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세 번째 도전은 힘들었을 터다. 그 돈을 들고 청주로 내려가 지하 198㎡(60평)짜리 보금자리를 마련해 직원들을 고용했다. 지금의 메타바이오메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 이후 메타바이오메드는 승승장구했다.
오 대표는 "똑같은 아이템으로 세번째 도전을 하는 거라 죽기살기로 사업에 매달렸다"며 "노사 갈등, 수작업 생산성 문제 등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노하우로 삼아 메타바이오메드에 적용했고 더 이상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수출이 계속 늘어나는 동시에 환율이 뛰면서 수익성이 좋아졌다.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 생산라인을 늘렸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연구소를 세웠다. 충치 치료용 재료를 대부분 해외로 수출했지만 사업다각화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수술 후 몸에서 녹는 생분해성 봉합원사를 세계 7번째로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 연간 매출은 28억원이었으나 투자금이 매출의 2배인 50억원이었다.
그는 "창업투자회사 20군데를 다니면서 사업 전망을 설명했지만 대기업의 세계시장 선점, 비싼 원료비, 부족한 마케팅 등을 이유로 전부 거절 당했다"며 "95%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머지 5%의 성공 확률은 인정해준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더니 이를 극복할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창업투자회사를 뒤로한 오 대표는 정부에 도움을 청해 30억원을 지원받았다. 급기야 이 돈을 조기 상환할 수 있는 성과까지 냈다.
happyny777@fnnews.com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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