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1)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대림파출소의 24시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대원들이 주택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인 후 주민들에게 당부사항 등을 적은 순찰카드를 걸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대원들이 주택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인 후 주민들에게 당부사항 등을 적은 순찰카드를 걸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연말연시 분위기로 국민이 들떠 있는 지금 이 시간. 국민의 안전과 행복 지킴이를 자처하며 불철주야 24시간을 뜬눈으로, 그림자로 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온 몸을 투신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고 활기찬 세상을 여는 '민중의 숨은 지팡이'들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새해를 맞아 사회 곳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공무원을 발굴, 활약상을 소개함으로써 이들에게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국민에게는 이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시리즈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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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다니는 사람 10명 중 8∼9명은 중국말을 쓴다.'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이 자리를 잡은 영등포구 대림동에 대한 얘기다. 과거 구로구 가리봉동에 살던 중국동포들이 재개발과 함께 10여년 전부터 임대료가 싸고 노후 주택이 많은 대림동으로 옮겨왔다. 대림동에서 길을 걷다보면 한국말보다 중국말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이 일대에서도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대림1·2동은 경찰 내에서 인정받는 '특별치안강화구역'이다. 전체 4만3000여명의 주민 가운데 중국동포 등이 1만6000여명으로 40%에 육박한다.

이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대림파출소 김진문 소장(경감)에 따르면 주말에는 유동인구를 포함해 적게는 4만명, 많게는 6만여명이 몰려든다.

대림파출소에 근무하는 인원은 김 소장을 포함해 모두 35명으로, 8명씩 조를 나눠 4조2교대로 근무한다. 김 소장은 "문화가 달라 다툼이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잘못을 하고도 본인이 잘못한 것인지를 모르는, 경찰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답답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조홍석 팀장(왼쪽 두번째)과 대원들이 유흥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조홍석 팀장(왼쪽 두번째)과 대원들이 유흥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밤낮 없이 골목골목 순찰활동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6일 대림파출소. 오후 2시가 되자 조홍석 팀장(경위)이 순찰에 나섰다. 오전 7시 출근해 9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조 팀장의 이날 두 번째 순찰이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지만 함박눈이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다.

대림파출소 경찰관들은 보통 주간에는 하루 10시간, 야간에는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동안 차량과 도보로 30분씩 번갈아가면서 순찰활동을 벌인다. 순찰차가 들어가기 힘든 골목이 많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길가로 난 방범창을 일일이 흔들어보고 창문의 잠금 여부 등을 확인한 후 현관 문고리에 순찰카드를 걸었다. 지난해 5월부터 영등포경찰서가 시행하고 있는 '포돌이 톡톡' 제도다. 경찰관마다 담당구역을 정해 취약한 골목길 등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순찰을 하고 허술한 방범창 등 범죄 취약점이 있는 주택은 범죄 예방을 위한 당부사항을 기재해 경찰이 다녀갔음을 알림으로써 주민을 '안심'시킨다.

조 팀장은 "시행 초기에는 여러모로 고충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다들 내심으로 귀찮아했던 게 사실입니다. 주민들도 '무슨 사건이라도 났느냐'며 달가워하지 않았죠. 일부 주민은 '경찰이 자주 왔다갔다하면 집값 떨어진다'는 얘기까지 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안심할 수 있어 좋다'며 주민이 더 반깁니다. 경찰들도 추운 날씨에 고생해도 과거보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사실 그전에는 새벽에 순찰을 돌아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니까요."

한 번은 절도가 발생한 집 순찰카드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집 주인이 경찰에게 오히려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가슴이 뭉클한 적도 있단다.

조 팀장이 한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이 집 할아버지 오늘은 댁에 무사히 잘 계신가"라며 혼잣말을 하더니 초인종을 눌러 직접 확인을 했다. 치매로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매던 70대 노인의 집이다. 자주 순찰을 돌다보니 자연스럽게 '요주의' 대상인 집의 상황을 훤히 꿰고 있는 것이다.

조 팀장은 골목을 나와 중앙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각종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조 팀장은 상가마다 들러 주민의 애로사항을 듣고 전단을 나눠주면서 범죄 예방을 위한 여러 사항을 당부했다. 대림동이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면서 강력사건 발생이 더 많아졌다는 조 팀장의 설명이다.

"한 번은 각각 다른 지역에 사는 10대 중국동포들이 인터넷 채팅으로 싸우다 실제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어요.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합의를 본 거예요. 한쪽은 7명이 야구방망이를, 반대편은 둘이서 칼을 들고 나와 한바탕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지금은 낮이니까 조용하지만 밤에는 전혀 딴 세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이은 출동으로 몸 녹일 새도 없어

오후 9시에 다시 찾은 대림파출소는 주야간 근무교대에 따라 새로 순찰근무를 편성하고 순찰계획을 짜느라 다소 부산스러웠다. 경찰관들은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비롯해 가스총과 수갑, 칼을 막아내는 방건복까지 갖춰 조 팀장이 낮에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정식 경사가 밤거리 순찰에 나섰다. 칼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세차게 할퀴었다. 주말에는 오후 9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정신이 없을 만큼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지만 이날은 평일이라 상대적으로 조용하다고 했다. "날씨가 춥다는 것만 빼면 겨울이 훨씬 편합니다. 찬바람이 부니까 한눈에 봐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안 보이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 여름이었으면 길거리를 지나다니기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매일 영하 10도의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대림파출소를 자원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는 자주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편입니다. 수갑이 모자라기 일쑤입니다."

정 경사가 파출소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무전기에서는 연신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벨도 요란하게 울려댔다. 한쪽에서는 교통사고, 다른 한쪽은 폭행사건이었다. 대기 중인 경찰들이 순찰차를 현장으로 보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폭행을 당해 다친 사람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내고, 사고로 크게 부서진 차를 겨우겨우 인근 공업사로 보내는 등 사건을 수습한 다음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파출소로 복귀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시간도 없이 다시 신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이번에는 '집에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다'는 여성, 택시비를 놓고 손님과 시비가 붙은 택시기사였다. 상황근무를 하던 임선규 경위까지 출동 준비를 하고 나섰다. 잠시 뒤 안심귀가서비스를 신청하는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으나 전부 출동 중이어서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건신고가 잠잠해진다는 새벽 1시가 돼서야 커피 한 잔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요함은 채 5분이 가질 않았다. 정 경사는 다시, 술에 취해 어느 건물 복도에서 잠들어 있다는 시민을 깨우기 위해 모자를 쓰고 밤거리로 향했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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