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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 칼럼] 한국호여! ‘오답노트’를 쓰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02 16:54

수정 2014.10.30 18:28

[김주식 칼럼] 한국호여! ‘오답노트’를 쓰라

밝아오는 여명은 가슴 벅찼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신세계와 조우하는 설렘이랄까. 아른거리는 한 폭의 기상도(氣像圖)가 흐뭇하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광야를 질주하는 말(馬)들의 진취적인 역동성! 그랬다. 2014년 새해는 저 장쾌한 말발굽 소리의 울림과 함께 찾아왔다. 덩달아 박동치는 심장. 사람들은 내친김에 축원을 실어 박차를 가했다.

제발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원풀이야 밑도 끝도 없으련만 한 줄기로 귀착되는 이 절규에 정부는 그러나 먹먹하다. 갈등의 풍파가 유난했던 묵은해의 공약가계부를 고스란히 이월했기에 말이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대한민국 경제여! '오답노트'를 작성하라고.

사회 밑바닥에 가라앉은 의욕 상실 증후군을 보면 오답노트는 절박하다.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나는 하층민'이라고 고개를 떨궜을까? 복기해보라. 일자리 중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봉급이 대기업의 반토막 수준에서 헐떡거리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얼추 맞먹던 1980년대 중기의 위상이 전설처럼 아득하다. 소득양극화! 이 기형적 프레임을 혁파하려 애쓰는 정부의 노고를 왜 모르겠는가. 동반 성장을 계획했고, 하도급 불공정거래 척결 경제민주화 입법도 세웠다. 한데 결정타를 놓쳤다. 국내 대기업들이 왜 수입산 중기 부품에 집착하는지를? 그 구조를 깰 '수입부품 대체산업'을 국내 시장에 꽃피우지 못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그걸 못해 여지껏 저성장·저소득 피터팬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의욕 상실 증후군. 해법은 복지다. 국민행복시대를 기약한 그 복지는 그러나 '세금 먹는 하마'로 홀대받고 있다. 더러는 표퓰리즘적 공약에 편승해 얼떨결에 새치기했기에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그 하마가 종내 도덕적 해이에 빠져 경제성장의 발목을 물어뜯을 것이란 극단론이 비등한 것인가. 내 생각은 다르다. 복지가 '일자리창출 방정식'의 상수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복지 마중물이 '소비증가→기업흑자→투자활성화→일자리창출'로 이어지는 방정식 말이다. 내수 시장은 지금 고소득층이 주도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저소득 소비층이 훨씬 두껍다. 이 부피 큰 소비층이 움직여야 내수가 산다. 경제성장의 과실즙이 복지라는 소득분배를 통해 바닥 밑까지 골고루 스며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는 이런 걸 설명해줘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공장 기계를 무한정 돌릴 수 없는 저물가 함정에 빠진 것도 이런 소득분배의 동력이 고장난 탓이라고. 부자들이 하루에 수십 끼를 먹어준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소득양극화를 방기할수록 증세와 같은 사회적 비용만 더 늘어날 뿐이다. 모두가 힘든 구조로 달려갈텐가. 하필이면 이 와중에 소득양극화를 부추길 돌발 변수가 생겼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킨 대법원의 판결 그것이다. 불길한 역습이 가물거린다. 당장 노조 교섭력이 강한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같은 업종이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질텐데 그 여파가 어디로 가겠는가. 만만한 게 하도급 업체다. 추가비용이 전가돼 안 그래도 헐거운 월급 봉투가 누더기가 된다. 대비하고 있는지?

50세 이상 중고령 자영업자 300만 시대! 이거 감탄할 일이 아니다. 50세 이상 인구는 1630만명.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창업전선에 뛰어든다는 얘기 아닌가. 매일 1000명씩 늘어난 결과다. 그런데 잠깐. 하루에 1만개 이상의 점포가 폐업한다는 통계는 또 뭔가. 그것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군단과 기존 골목 군단과의 전쟁, '정글의 대혈투'가 남긴 민족적 상흔이다. 골목 상권마다 간판 허물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전쟁은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화급하게 던지는 건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허리, '중산층의 붕괴' 때문이리랴. 최근 2년 새 창업 실패로 빚 감당을 못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불이행자는 열 명 중 여섯 명이 중산층이다.


정녕 그 무엇이 국민을 의욕 상실감에 빠뜨렸을까? 이 외마디가 더욱 처연하게 들리는 건 행복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저성장에 복지시스템마저 흔들리면 불안 심리가 싹트는 건 경험칙이다.
국민들은 그래서 물음표를 단다. 나라경제가 혹여 착오를 노정한 건 아닌지?

joosik@fnnews.com 김주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