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글로벌IP ‘넘버1’ 을 만나다] 이영필,국내 특허시장 리더..벤처 CEO시절 ’쓴 경험‘이 자양분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08 17:04

수정 2014.10.30 17:42

이영필 리앤목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사진=박범준기자
이영필 리앤목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사진=박범준기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지식재산권(IP) 관리의 중요성이 산업계에 핫 이슈로 떠올랐다. 지재권 이슈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지재권에 대한 노하우를 소홀히 다뤘다간 언제 어디서 낭패를 당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지재권 이슈를 사례중심으로 소개하는 '글로벌 IP넘버 1을 만나다' 코너를 신설한다. 독자들은 이 코너를 통해 간접적인 현장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저만큼 벤처 중소기업의 입장을 아는 변리사가 있을까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든든한 조력자라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리앤목 이영필 대표변리사(65)는 예상 밖의 화두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초 그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좀 더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었다. 리앤목은 10여년간 해외 특허 출원 건수 1위를 기록해온 대형 특허법인 아닌가. 해외 무대에서 어떻게 특허를 받았는지, 치열한 분쟁에선 어떻게 이겼는지 자랑 섞인 후일담을 기대하는 게 당연했다.

사실 그 기대가 무너진 건 5㎡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서부터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장에 가져다 놔도 손색이 없는 낡은 소파와 오래된 탁자, 업계 톱을 달리는 대표의 방치곤 소박해도 너무 소박했다.

■잘나가던 기업인, 특허 취소당하다

그의 정체를 안 사람은 두 번 놀란다. 우선 그가 수년 전 코스닥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벤처기업 잘만테크의 대표였다는 점, 잘나가는 변리사이자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였던 그가 대만에서 특허 취소를 당한 이력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직도 유명 포털에 그의 이름을 치니 경영권 방어, 경영권 매각 등 잘만테크의 '우울한' 과거가 줄줄이 뜬다.

이 변리사는 "PC용 냉각장치를 만들어 해외에 진출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다. 벤처코리아 대상,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 등 대통령 표창도 두 번이나 받았으니 당시로선 성공한 사업가였던 셈"이라며 과거를 추억했다.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지 못하면서부터다. 신성장 동력이 없으니 미래가 막막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키코(KIKO)의 외환선물로 막대한 손해까지 봤다. 회사는 휘청댔고 그는 경영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유명 변리사였던 그는 중국과 대만에서 특허가 취소됐다.

"2008년 중국 업체에 특허.디자인 침해소송을 해 이겼어요. 그런데 이 업체가 다시 특허 무효 소송을 한 거죠. 최종판결까지 우리 손을 들어줬는데 재심에서 결과가 뒤집혔어요. 정말 답답하더라구요."

5년 전 일인데 그는 바로 어제 당한 일처럼 허탈하고 억울해했다. 변리사 출신 기업인도 이런 일을 당하는데 일반 중소기업 대표들은 오죽하겠느냐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최근 10년간 모든 산업 분야에서 특허 분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기업이 외국기업에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는 건데 경영 일선에선 사람들이 이를 잘 대비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변리사 등을 고용해 자문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지재권 인력을 부사장급으로 경영 전략에 참여시키는 외국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요."

국내 현실을 말할 때는 내내 안타까운 표정이던 이 대표는 화제가 변리사 소송 대리권에 이르자 목소리를 높였다. 갈수록 지재권 분쟁은 전문화되는데 핵심 기술을 꿰뚫고 있는 변리사를 제외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재판정에서 변리사들이 배석해 반론 때마다 변호사들에게 쪽지로 설명을 해주는 상황이 왕왕 연출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끼리 분쟁을 할 때야 서로 쪽지변론을 한다지만 해외 기업과 분쟁할 때는 어림도 없지요. 바뀌지 않으면 결국 한국은 다 키워놓은 산업을 지재권 분쟁으로 잃게 되는 겁니다."

■변리사 2명으로 시작, 삼성과 함께 성장

리앤목은 1985년 변리사 2명에 직원 5명인 '이영필 합동 특허법인 사무소'로 출발했다. 이 변리사의 표현대로라면 "억세게 운이 좋아" 1988년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를 대리하면서 사무소가 급성장했다. 이후에도 삼성전관(현재 삼성 SDI), 삼성반도체, 삼성기술원, 삼성전자까지 쭉 맡으며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1987년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D램 기본 특허 사용대가로 1억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한 일이 있었어요. 분명 D램 독자 생산을 성공했다고 믿었는데 산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죠. 그 후 외국 선진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특허, 특히 해외 특허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덕분에 일거리가 크게 늘어났지요."

리앤목은 현재 변리사 149명, 변호사 6명을 포함해 32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특허 강국인 미국에서도 톱 5에 들 정도로 큰 규모다. 지난해 미국 특허청에 출원한 건수만 해도 2700건, 이 역시 미국에서 톱 5에 들 정도로 많은 수치다.

리앤목은 주요 업무를 출원, 분쟁, 컨설팅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 바로 출원 분야다.

"제대로 된 특허, 즉 권리범위를 최대한 넓게 설정한 특허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강력한 특허는 분쟁 소지까지 없애는 역할을 하기에 애초부터 출원에 가장 큰 공을 들여야 합니다."

리앤목이 주로 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특허 출원이다. 거꾸로 외국기업들이 국내 출원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체 업무의 20% 내외다.

이 대표는 "미국은 특허 출원에 드는 비용이 한국보다 3배가량 비싸 중소기업들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해외출원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인건비인 만큼 국내 대리인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최대한 마무리해서 미국 측에 넘기는 것이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고 알려진 해외 특허 분쟁도 마냥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다. 통상 해외에서 특허 침해 소송을 걸어오면 중소기업 대표들은 두려움과 부담감에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상대방이 소송을 취하하거나 아주 적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정서로는 소송을 하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질 때까지 가자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외국은 타협하자는 제안인 경우가 많다"면서 "국내 법인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현지 대리인에 인계한다면 특허 분쟁 비용을 1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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