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 시장에 '레노버 광풍'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 아래 성장한 레노버는 최근 IBM 서버사업과 '휴대폰의 원조'인 모토로라를 잇따라 인수하는 광폭 행보로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시장과 IT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경영난에 빠진 소니와의 PC사업 제휴설도 터지는 등 갑오년 벽두를 레노버가 뜨겁게 달구고 있다. 레노버가 과거 IBM의 PC사업을 인수해 세계 1위로 성장시킨 역량을 갖춘 점에서 이번 M&A가 글로벌 IT시장에 메가톤급 지각변동을 몰고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면 레노버가 삼킨 '제물'들이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과 부가가치가 낮은 매물들이라는 점에서 소리만 요란한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평가절하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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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버는 1984년 국책기관인 중국과학원 컴퓨터연구소 출신 엔지니어 11명이 설립한 렌샹이라는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타자기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1990년대 독자 브랜드 PC를 내놓고 중국 내수시장을 평정하며 급성장했다. 이후 세계화 전략을 추구한 레노버는 2005년 IBM의 PC사업을 17억5000만달러에 인수, 단숨에 글로벌 PC시장의 거물로 우뚝 섰다.
■이름 없는 벤처에서 M&A 큰손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는 "레노버가 비교적 단기간에 글로벌 PC 선도기업으로 성장한 건 국가, 인종, 종교 등 모든 편견을 배제하고 철저히 현지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3일 말했다.
이후 레노버는 다국적 기업문화를 앞세워 내리막길을 걷는 PC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이면서 지난해부터 휴렛팩커드(HP)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PC시장을 평정한 레노버는 다음 목표를 모바일과 기업용 서버 쪽으로 잡았다. 레노버는 지난달 24일 23억달러에 IBM x86서버 사업부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5일 뒤인 지난달 29일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를 29억1000만달러(3조1000억여원)에 인수하는 계약까지 하면서 '무서운 식성'을 과시했다. 20세기 미국 IT산업의 대표주자였던 IBM과 모토로라가 중국 품에 넘어가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레노버 영토확장' 계속되나
이제 IT시장의 관심은 과연 '레노버발' M&A 태풍이 어디까지 몰아칠지에 쏠리고 있다. 일단 레노버의 최근 M&A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레노버는 IBM의 x86서버 사업부 인수 직후 현재 4%가량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3년 안에 10% 이상으로 끌어올려 HP, 델, IBM 등의 3파전 구도에 뛰어든다는 구상이다.
한국IBM 김화영 실장은 "IBM 입장에서는 레노버가 시장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x86 서버 서비스와 통합시스템 구축 등 함께 단단한 파트너십으로 '윈윈 전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전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모토로라 인수와 관련, "제조력과 글로벌 유통망을 갖춘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는 장기적 측면에서 브랜드 시너지 효과가 예상돼 선두 기업에는 위협요소"라며 "단기적으로는 불투명하지만 5년 이후에는 이번 M&A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델코리아 관계자는 "기존 IBM의 전략이 하이엔드 위주였다면 레노버는 저가형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레노버가 가세하더라도 기존 사업자들이 파트너십과 기술적 역량 등에서 앞서는 만큼 우려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에이수스코리아 관계자는 "(서버와 휴대폰 등) 레노버가 인수하는 부문은 고부가가치가 아닌 사업들"이라며 "쉽게 말하면 파는 입장에서 별다른 재미가 없는 것들을 헐값에 매각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아울러 레노버의 다음 '먹잇감'이 어디가 될지도 관심 대상이다. 현재로서는 PC, 휴대폰, 서버 등 IT시장을 아우르는 레노버의 식성을 고려할 때 향후 M&A의 향배는 '시계제로'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단 휴대폰 업계에서는 블랙베리 인수설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고 있다. 레노버는 지난해 말 블랙베리의 재무상태에 대한 실사작업을 진행하는 등 인수를 추진했다가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휴대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팬택도 레노버의 인수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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