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육군 사망보상금 50년 안준 정부, 파기환송심도 패소

뉴스1

입력 2014.02.04 05:00

수정 2014.10.30 00:11

정부가 1950년대 발생한 한 육군 장병의 죽음에 대해 50년 가까이 사망원인 규명·보상금 지급처리를 제대로 해오지 않다가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까지 소멸시효를 주장했지만 파기환송심에서도 사실상 패소했다.

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유족들의 소송 제기가 늦어졌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를 담백하게 긍정하는 것도 국가가 할 일”이라고 엄히 꾸짖었다.

서울고법 민사24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육군에서 복무하다 숨진 원모(사망 당시 23세)씨 유족들이 낸 1억6849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정부는 원씨 유족들에게 1억1849만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원씨는 1956년 소속 중대 미화작업을 위해 야산에서 흙을 파다가 갑자기 무너진 동굴에 깔려 숨졌다.

그러나 당시 육군은 유족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지도 않은 채 이튿날 급하게 시신을 화장했고 유족에게는 사망 11개월이 지난 후에야 “원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짧은 통보만을 보냈다.

정부는 41년이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원씨에 대해 순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원씨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것은 이때로부터 8년이 지난 2005년이었고 보상과 사망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심장마비’로 알려졌던 원씨의 사망원인이 사실은 ‘군 부대의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원씨 유족들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한 뒤였다.


하지만 정부는 2009년 진상조사 결과를 통보하면서도 여전히 보상을 하지 않았고 원씨 유족들은 결국 지난 2011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정부는 “원씨의 사망 이후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했다”며 “유족들에게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진상조사 결과 통보 당시 이런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현행 민법은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손해가 발생했음을 안 때로부터 3년, 손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10년’을 소멸시효기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을 때는 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며 이유가 사라진 때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원씨 유족들은 2009년에야 비로소 손해의 발생을 알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기간인 ‘3년’은 이때로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며 6개월만에 권리가 소멸했다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과거사 배상기준과 관련해 지난해 5월 내려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권리가 소멸되는 기간이 6개월인지 3년인지를 명확히 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도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은 여전히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씨 유족들이 조사 결과 통보시로부터 1년4개월이나 지나 소송을 제기한 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며 “생활고 등으로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얻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년4개월이란 기간은 원씨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에 걸린 52년의 세월과 비교해 그리 긴 기간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파기환송심 재판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드러난 정부의 부실한 보상금 처리과정도 역시 정부의 시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됐다.

정부는 원씨를 국가유공자로 등록할 당시 “원씨 딸이 이미 성년이어서 보상금 수령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2009년 사망조사 결과를 통보할 당시에도 “이미 순직처리가 이뤄져 보상과 관련된 안내는 불필요하다”며 보상절차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원씨 유족들로서는 사망원인에 관한 진상을 어렵게 밝혀낸 담당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민원회신을 신뢰하는 게 보통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군인과 유족에게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재이유”라며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면 이를 담백하게 긍정해 예외적 구제조치 등 배려를 하는 것도 국가의 존립이유에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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