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새 유럽 모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04 17:06

수정 2014.10.29 23:45

[세계 석학에 듣는다] 새 유럽 모델

5년 전, 중·동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성장 스토리의 고향이었다. 국내총생산(GDP) 연간 성장률은 5%에 육박해 중국과 인도에만 못 미쳤을 뿐이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연간 400억달러가 넘었다. 유럽 전체에서 팔린 자동차 6대 가운데 1대는 이 지역 공장에서 수출됐다. 생산성과 1인당 GDP는 급속히 늘었고, 서유럽과 격차를 좁혀 나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따른 경기침체 이후 이 지역은 모멘텀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위기 이전 수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2008~2009년 75% 급감했던 FDI도 부분적으로 회복됐을 뿐이다.

사실 중·동유럽은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의 새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요인들은 여전히 훼손되지 않았다.

성장과 FDI 유입은 전반적으로 여전히 침체돼 있지만 중·동유럽은 위기를 비교적 잘 견뎌냈다. 대부분 국가의 공공부채는 2004년 이후 GDP의 60%를 넘지 않고 있다. 2004년 이전 당시 유럽연합(EU)을 구성했던 15개 회원국 대부분의 상황과 크게 대조적이다. 또 이 지역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력이 풍부하지만 임금은 EU 15개국 평균의 75%에 불과하다.

반면 과열 요인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위기 발발에 일조했던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루마니아의 부동산 가격은 2004~2007년 연간 23% 올랐다. 기업환경이 크게 개선됐지만 부패 면에서는 EU 15개국에 뒤져 있다.

무엇보다 위기는 경제모델의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냈다. 서유럽에 대한 수출의존과 대출·FDI로 부추겨진 소비 수준이 다른 개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동유럽은 연 성장률을 4~5%로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모델의 핵심 요소는 세 가지다:질적·양적인 수출 확장, 취약부문 생산성 향상, 또 FDI를 계속 끌어오되 국내 저축을 더 높여 이를 통한 성장자원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 국가는 수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큰 기회를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전 유럽, 또 그 외 지역까지를 아우르는 지역 식품가공 허브에 좋은 입지다. 이 지역 임금은 꽤 낮아 베를린에서 팔리는 소시지는 함부르크보다 폴란드에서 만들 때 생산비가 40% 적게 든다.

이들 국가는 또 자동차, 항공기 부품 같은 '지식집약적' 품목 순수출국이다. 게다가 교육에 대한 추가 투자와 남폴란드 돌리나 로트니차(항공계곡) 같은 산업클러스터를 더 개발함으로써 더 정교한 산업부문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도 있다.

집약지식형 서비스 부문 역시 유망하다. 폴란드를 중심으로 이 지역은 점차 아웃소싱과 역외사업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 지역 아웃소싱 산업은 인도보다 2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의 두 가지 추세(임금비용 상승과 지속적인 문화·언어 문제에 대한 아웃소싱 이용 서구 고객의 점증하는 우려)를 고려하면 성장 전망은 훨씬 더 높아진다.

중·동유럽은 높은 언어구사 능력에 더해 유럽·북미 고객과 문화적으로 친숙하다. 또 유럽·미국과 시간차 역시 아시아에 비해 더 좁다.

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부문도 여럿이다. 건설부문 생산성은 EU 15개국에 비해 31% 뒤져 있다. 농업 역시 기계화 수준이 크게 낮은 소규모 영농 위주여서 생산성이 낮다. 농업부문을 개방하면 농장의 평균 규모를 키우고, 현대식 농법을 도입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전력, 철도 등 '망산업'은 이 지역 대부분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민영화됐다. 이 부문을 더 개방해 경쟁과 시장 인센티브가 적용되도록 하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빚을 낸 소비와 변덕스러운 FDI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내 저축률을 반드시 끌어올려야 한다. 연금개혁과 금융시장 추가 개발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지역의 상당한 추가 성공 잠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장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요구된다.

마틴 베일리 브루킹스연구소 경제정책개발부문 책임자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