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또 하나의 약속’, 영화 하나 보기 참 어렵죠?

뉴스1

입력 2014.02.05 19:14

수정 2014.10.29 23:00

[기자의 눈] ‘또 하나의 약속’, 영화 하나 보기 참 어렵죠?


겨우 겨우 만들었는데 개봉까지 방해하고 있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말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적으로 균형을 이룬다고 했지만 ‘또 하나의 약속’과 관계된 보이지 않는 손은 관객들의 자발적인 예매 행렬에도 개봉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으며 오히려 균형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영화라는 사실 자체가 이유라는 겁니다. 실제로 2011년 서울행정법원이 고 황유미씨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했으나 항소가 진행 중입니다.
‘또 하나의 가족’이란 이름일 때 눈치를 보느라 극장들이 시사회를 여는 것 조차 꺼려하자 마케팅 차원에서 제목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바꾼 것에서 드러나듯 삼성으로서는 마뜩치 않아할 작품으로 짐작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아마 안 될 거야’라는 말이 뼈 있는 농담으로 유행어가 된 이 시대에 ‘될 것’이라는 꿈으로 연출된 작품입니다. 지난 1월24일까지 총 8075명이 3억1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냈고 100여명은 약 12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제작비 10억원 전액이 예비 관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입니다.

재판에 나선 황상기씨의 신문기사를 보고 2011년 이후 8개월간 현장 취재해 영화를 만든 김태윤 감독부터 시나리오의 진정성에 반해 노개런티로 참여한 ‘도둑들’·‘베를린’의 최영환 촬영감독, 재능기부한 수많은 보조 출연자들, 후원금 대신 각종 현물로 영화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들까지. 영화가 끝난 뒤 끊이지 않고 올라가는 후원자와 투자자들의 이름은 모래알이 모여서 기어코 성을 쌓아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 감독은 지난 1월8일 열린 VIP 시사회에서 “개봉 이후에도 이 영화를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는데요, 그의 말처럼 6일 개봉을 앞둔 ‘또 하나의 약속’이 관객들을 찾아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300개관 개봉이 목표였는데 개봉 직전에도 좀처럼 극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대형 복합상영관들이 개봉 직전 예매 가능한 극장수를 줄이면서 ‘외압설’이 일고 있습니다.

5일 오후 5시10분 기준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실시간 예매율에서 6.9%로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일찍이 개봉해 흥행 중인 ‘겨울왕국’(40.6%)과 ‘수상한 그녀’(23.4%)의 뒤를 이어 가장 높은 예매율입니다. 이들 영화는 스크린수도 약 800개에 달합니다. 기다렸던 영화를 혹시나 못볼까 예매율을 조금이라도 높여보려는 관객들과 극장이 소위 ‘밀당’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또 하나의 약속’ 개봉관 수가 며칠 사이에 왔다갔다 했습니다.

먼저 롯데시네마가 지난 4일 서울, 인천, 일산, 부산, 대구, 포항, 청주 등 7개 극장에서만 ‘또 하나의 약속’을 개봉하겠다고 밝혀 의문을 자아냈습니다. 연이어 메가박스까지 개봉관 논의 과정에서 예매 창구를 잠시 닫고 일부 극장이 환불까지 하자 외압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또 하나의 약속’은 5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104개관에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메가박스는 전국 26개 극장, CGV는 45개 극장, 21개 개인극장에서 개봉을 확정지었습니다. 다만 롯데시네마는 위탁관 4개를 포함해 12개 극장에서 개봉하기로 했습니다. 롯데시네마만 있는 지역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셈입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프로그램 팀에서 내부 판단 기준으로 ‘또 하나의 약속’을 예술영화라고 봤다. 개봉 뒤에 흥행이 잘 된다면 다른 영화에서 그랬듯 개봉관을 늘릴 계획”이라며 외압설을 부정하고 향후 관 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배급사 쪽에서는 롯데시네마가 “요지부동”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일부 극장들은 직영관이 아닌 위탁관이며 나머지 극장들도 예술영화 전용관인 아르떼 극장에 배치하는 등 다른 복합상영관과 비교해도 턱없이 모자란 수치”가 불공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관객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또 하나의 약속’ 롯데시네마 상영관을 늘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려 현재 서명이 진행 중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 윤기호 대표는 “예매율 3위도 그렇고 맥스무비와 같은 예매사이트에서 이 영화는 2월에 보고 싶은 영화 1위를 했다. 객관적인 수치에 따라 통상적으로 봤을 때 흥행 기대작”이라며 기대작들이 400~500개관에서 개봉하는 것과 약 100개관을 잡은 ‘또 하나의 약속’을 비교했습니다. 롯데시네마가 개봉관을 늘린 것을 두고도 교차상영하는 관도 있다면서 “(프로그램팀) 개인의 판단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개봉작으로 안 올린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윤 대표는 “언론·배급시사회 때 지방극장 관주들이 와서 ‘이 영화를 걸고 싶다’면서 300개관 정도는 잡겠다고 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얘기해줘서 약 100개관을 잡았지만 이 자체도 너무 답답하다. 또 한국영화 개봉작이면 적어도 지상파 3사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 중 한곳에서는 나오는데 ‘또 하나의 약속’은 지난주, 이번주 모두 하나도 못 나갔다.
비단 대형 복합상영관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주는 다음주”라고 여기고 있다는 윤 대표는 말을 마치며 꼭 이 말만은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는 이번주에 영화를 예매하고 봐주는 것만이 극장에 (부당함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황상기 아버님은 지난 1월7일 열린 ‘또 하나의 약속’ 제작보고회에서 “영화보다 현실이 더 심했다”고 하셨는데요, 영화조차 제대로 못 보는 현실과 비교하니 아버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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