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들은 골프를 못 치면 사장이나 회장으로부터 "머리가 나쁘거나, 운동 신경이 없거나,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당해 승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침잠을 줄여서라도 기를 쓰고 연습장엘 가게 된다.
그러니 핸디캡은 9 이하이거나 못해도 10~12는 유지한다. 하지만 이들은 윗사람을 모시거나 접대 골프가 많은 탓에 필드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들다.
윗사람보다 잘 치면 "이 사람이, 일은 안 하고 골프만 쳤나"라는 질책 아닌 질책을 들을 수 있다.
그러니 대기업 임원 입장에서는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면서 막판에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전략을 짜면 '최고의 접대 골프'가 이뤄지는 것이다.
15번 홀까지 실력을 발휘해 내기 돈을 거의 다 거둬 들이면 동반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마련이다. 그러나 16번홀이나 17번홀에서 동반자들 모르게 방향을 살짝 틀어 드라이버샷 OB(아웃오브 바운스·2벌타)를 내게 되면 트리플 보기를 범하게 마련이다.
"아, 꼭 막판에 오면 한 번씩 OB를 낸단 말이야" 하면서 고의가 아닌 척 둘러대며 딴 돈을 몽땅 토해내면 상대방들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져주기 게임'이지만, 좋게 말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뽑기'는 일종의 하향 평준화 게임이어서 스포츠 정신에는 위배된다. 하지만 잘 치는 사람이 못 치는 사람과 어울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접대 대상이 좀 못 치더라도 '조커'를 뽑거나 고점자와 한편이 되면 그 홀에 걸린 내기 돈을 딸 수가 있다. '90~100타'를 치는 하점자와의 접대 골프에서는 최상의 선택이다.
'조폭'과 '뽑기' 내기를 할 때마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절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미국·유럽·일본 사람들은 거의 골프 내기를 않는다지만, 해외 바이어들과의 골프 때 이런 오묘한 게임 방법을 잘 설명하면 내기에 쏙 빠져들지 않을까. 계약도 잘 이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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