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 아베 총리의 마지막 숙제

양승득 기자
파이낸셜뉴스
[양승득 칼럼] 아베 총리의 마지막 숙제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일본을 칼럼 소재로 올리는 일을.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일본 뉴스를 다루며 보낸 과거 시간이 제법 되다 보니 만만한 것들 중에서 '쉽게' 소재를 고른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였다. 또 하나는 써봤자 어차피 좋은 소리를 늘어놓기 어려워서였다. 그러나 용기를 냈다. 쓰고 싶은 다른 글도 많지만 한번 더 눈을 질끈 감기로 했다. 평균적 한국인들보다는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안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두 나라 사이가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는 안타까움 또한 글을 쓰도록 등을 밀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시라도 빨리 양식과 양심을 되찾고 선동 정치를 그만두기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파원 일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지 정확히 만 10년이다. 하지만 정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 노랫말처럼 도쿄의 추억은 그리움으로 늘 가슴에 남아 있다. 가스미가세키의 관청가, 오테마치의 오피스타운, 총리관저 등등… 취재하러 다니던 그때 그곳의 기억은 기록영화의 장면처럼 선명하다.

일본 열도는 조용했다. 빅 뉴스가 많지 않은 싱거운 곳이었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로 2001년 초반 잠시 시끄러웠던 일을 제외하면 잠잠했다. 두 나라가 함께 치른 월드컵 축구대회는 착한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 답안에 가까웠다. 일본을 열광시킨 한류 열기는 사실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인 취객을 구하러 열차에 몸을 던졌다 희생된 고 이수현씨의 죽음 앞에 일본 열도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의 봄. 지금의 도쿄 소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똑같은 나라, 그때 그 사람들이 맞는지 내 눈과 귀를 의심한다. 조롱을 넘어선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고 저주에 가까운 험담이 판을 친다. 모두 한국을 향해서다. 광기의 집단적 히스테리 그 자체다. 혐한(嫌韓) 악한(惡韓)의 머리띠까지 둘렀다.

2014년판 집단적 히스테리 퍼레이드의 총지휘자는 아베 신조 총리다. 그는 총리 취임 직후부터 한국은 물론 중국 등 이웃나라와 좌충우돌로 평지풍파를 일으켜 왔다. 과거사 부정에서 영토분쟁, 평화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에서 시작된 사건, 사고는 한둘이 아니다. 열거할 필요도 없다

한국인의 눈에 비친 아베 총리의 인상은 우호적이기 어렵다. 아니 최악이다. 태생부터 그렇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외조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다. 가장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은 조선 정벌의 정한론에 앞장선 인물이다. 아베 총리의 고향 야마구치현은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태어난 곳이다. 집안 내력과 출생지부터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국을 향한 아베 총리의 행보와 입은 결단코 달라야 한다. 입은 무겁고 몸가짐은 진중해야 한다. 식민지배로 입은 한국, 한국인의 상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전혀 없던 것처럼 아물지는 않는다. 일본에 대한 불쾌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는 과거 어느 총리보다 한국에 도발적이다. 생떼 부리기 일쑤고, 대화하자면서 뒤통수를 친다. 광기의 욕설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태를 즐기는 모양새다. 파괴적 리더십이요, 나라와 지역 평화를 위태롭게 할 일탈이다.

아베 총리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꿈을 꿀지 모르겠다. 이토 히로부미에 이어 초등생 교과서의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길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는 어림없다. 다른 나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평화를 깼다고 욕먹는 정치인을 위인으로 올릴 만큼 오늘의 일본 사회가 눈이 멀지는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듣기 거북한 칼럼을 썼다고 그가 달라질 리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글을 더 이상 안 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어느 한국인보다 일본, 일본인들의 바른 선택을 기대하기에 더 그렇다. 도쿄의 3월 말은 아름답다. 벚꽃들이 수놓는 도심 풍경은 환상적이다. 아베 총리가 큰 정치, 바른 정치로 돌아오고 나는 그때쯤 벚꽃 명소인 지도리가부치 근처를 편안한 맘으로 거닐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mail protected]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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