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작방 단속이 그리 위험할까' 싶던 차 "가끔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죽기 살기로 반항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는 정 팀장의 설명이 들려왔다. 정 팀장도 경찰 생활 20년 가운데 6년 반을 외사 분야에 근무한 베테랑이다.
■'대기'는 기본…인내심과의 싸움
강력1팀의 이날 단속대상은 지하철7호선 남구로역 인근의 4층짜리 다가구주택 반지하 집이었다. 가정집 같은 곳에 기계를 들여놓고 영업 중이라고 했다. 계 대장은 "1주일 전에 첩보를 입수했는데 사흘 전 단속을 시도했으나 눈치를 채는 바람에 철수한 바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차로 20여분 만에 도착했지만 다가구·다세대가 밀집한 탓에 주차부터 쉽지 않았다. 멀찌감치 차를 대고 탐색을 시작했다. 단속대상 주택 문에 귀를 대고 들으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단다.
그리고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계 대장은 마작방 단속에서 핵심은 '순간포착'이라고 했다. 안에서나 밖에서 문을 열 때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문을 부수거나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도박꾼들이 증거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계 대장은 "초창기에는 택배원 등을 가장해 진입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 통한다"면서 "가스를 잠그거나 전기를 끊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 궤짝을 현관문 앞에 집어던져 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잠복에 들어가면 두어 시간 대기하는 것은 보통이고 어떤 때는 대여섯 시간 넘게 걸리는 수도 있다"며 "마작방 단속은 인내심과의 싸움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정 팀장의 얘기는 단속 경찰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가구주택 3층에 있는 마작방을 단속하러 갔을 때였어요. 계단에 철문이 잠겨 있어 대문 앞에도 못 가는 상황이었죠.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전봇대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위에서 진입하기로 했습니다. 옥상으로 돌출된 화장실의 창문을 뜯어내고 도박현장을 급습했어요. 단속은 성공을 거뒀죠. 그런데 알고 보니 계단 철문이며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마작방 단속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망을 보는 형사가 얼마나 중국동포처럼 보이는가'다. 대다수 마작방이 폐쇄회로TV(CCTV)를 갖추고 있어 들킬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강력1팀에서 이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강래순 경사(44)다. "며칠 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슬리퍼를 신은 채 검은 비닐봉지 하나만 들면 영락없는 중국동포의 모습"이라는 정 팀장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여름 마작방을 단속할 때였다. 여느 때처럼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마작방 근처를 배회하던 강 경사는 도박꾼 일행으로 오해를 받아 홀로 마작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작방 주인은 '머릿수가 맞지 않아 시작할 수 없으니 잠시 기다리라'며 강 경사에게 과일을 대접하기까지 했다. 동료들이 들이닥치기를 기다리던 강 경사는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 동료들은 소식이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온 강 경사는 잠복 중이던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알고 보니 장시간 잠복에 지친 동료들이 모두 잠들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날 단속은 성공을 거뒀지만 강 경사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마작방과의 끝없는 전쟁…다른 범죄 예방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동안 2시간이 훌쩍 지나 시계는 오후 4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앞에서 대기 중이던 강 경사에게서 신호가 왔다. 안에서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진입에 성공했다.
마작방 내부는 여느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안방을 제외한 다른 두 개의 방에 마작 기계와 의자가 놓여 있다는 점과 안방 TV 위에 바깥 상황을 훤히 볼 수 있는 CCTV와 연결된 모니터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날 붙잡힌 도박꾼은 여성 4명과 남성 1명이었다. 다행히 저항은 거세지 않았다. 이들은 형사들을 붙잡고 "처음 온 것이니 봐달라" "밥 먹으러 왔다가 심심풀이로 한 것이다" "중국에서 마작은 도박이 아닌 오락이다" 등등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형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증거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 판돈이 크지는 않아 보였다.
정 팀장이 단속 사실을 확인하고 미란다원칙을 고지했다. 수사대로 데려가 입건할 방침이라고 했다. 정 팀장은 "도박 규모는 크지 않으나 수백만원짜리 기계를 두 대씩이나 들여놓은 점을 감안할 때 전문 마작방이 확실해 단속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박 여성 중 한 사람이 강 경사에게 아는 척을 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번은 마작을 하다가, 두 번은 마작방 주인으로 이미 세 차례나 단속에 걸린 경험이 있다. 강 경사는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면서 "좋은 데서 봐야지 자꾸 마작방에서 만나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만큼 마작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지난 2011년 국제범죄수사5대는 관할지역인 영등포·구로구 일대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마작방 200여곳을 적발하고 1700여명을 검거했지만 지금도 수십∼수백곳이 암암리에 성업 중이란다.
계 대장은 "일용직으로 한 달에 100만∼200만원 버는 중국동포가 마작에 빠져 하룻밤에 다 잃고 빚까지 져 결국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사고나 범죄로 연결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마작방 단속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형사들이 도박꾼을 수사대로 데려가기 위해 차에 태우면서 3시간여에 걸친 마작방 단속은 마무리됐다. 정 팀장은 "사건이 작아서 좋은 것도 있다"며 "구속해야 하는 사안이라면 집에도 못 들어가고 근처 찜질방에서 하루이틀 더 고생해야 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깨어 있는 아이 얼굴을 볼 수 있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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