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엘리트 ‘정도전’과 선량한 ‘도깨비’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3.31 17:10

수정 2014.10.29 00:36

[fn논단] 엘리트 ‘정도전’과 선량한 ‘도깨비’들

본래가 호방하고 매우 해학적인 성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정도전은 '금남잡제(錦南雜題)'에서 난데없이 선량한(?) 도깨비들을 그려내고 있다. '금남잡제'란 그가 원나라 사신 접견 문제로 당대 최고의 권문세족이었던 이인임과 다투다 유배를 가 거기서 썼던 산문들을 모은 것으로 금남은 현재 전라남도 나주를 말한다. 나주 회진현 내 거평부곡의 한 촌락인 소재동에서 1375년부터 1377년까지 귀양살이를 한 셈인데 이때 자신의 심경을 묘사한 시 모음이 '금남잡영(錦南雜詠)'이고 산문 모음이 '금남잡제'이다.

정도전은 '사이매문(謝리魅文)'이란 글에서 도깨비가 집 안팎을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 정신이 산란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짜증을 내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개경에서 유배를 온 인물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말하자면 이들은 일반 백성도 아니고 무시받고 천대받아 입성이나 먹성 모두가 마치 도깨비처럼 숯투성이 봉두난발로 꾀죄죄한 최하층 부곡민들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들 정도전 주변으로 몰려들었을까. 이들을 도깨비로 '애칭'하면서 그들이 자기와 놀아주는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는 정도전의 친화적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끝없이 천대받고 무시받고 권문세족들의 대토지겸병으로 하여 송곳 꽂을 자기의 땅 하나 없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지옥 같았던 그들이었기에 정도전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그에게 달려가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친화력이 그와 정몽주의 갈 길을 결정적으로 갈랐던 분수령이었다 할 것이다.

학대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정도전의 애정이 그로 하여금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개국하게 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가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을 정치의 한가운데 세우고 싶어했는가는 급진적인 토지개혁 과전법을 세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그의 조선왕조 500년 설계도인 '조선경국전'이나 '경제문감'의 한 귀퉁이만 들춰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그가 부모의 시묘살이 세월을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 한 권으로 보냈다는 것도 한 계기였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도 그가 처한 신분적인 한계들도 그로 하여금 이미 유년시절부터 낮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가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할 것이다.

'금남잡제'에는 그의 유명한 '답전부(答田父)'도 실려 있다. 귀양지 나주에서 만난 한 농부의 현실 정치에 대한 준열한 비판을 듣고 그가 혹 숨어 있는 선비가 아닌가 눙치고 있는 정도전이 정작 말하고자 했던 것도 단순히 일개 은둔자의 경우에만 국한된 말은 아니었으리라. 왜냐하면 이 이야기에서의 농부의 현실정치에 대한 준엄한(!) 비판도 따지고 보면 숱한 농부들의 굶주림과 절망의 한가운데 던져진 고려 말 한 엘리트(정도전)의 냉엄한 양심의 소리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정도전'의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정도전이 꿈꿨던 '위민정치'에 수많은 청장년층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들 청장년층은 아마도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자신들의 힘든 처지도 처지였겠지만 매스컴을 타고 전하는 숱한 비보들, 말하자면 '송파구 세 모녀'나 각종 복지원 사건의 참담한 희생자 등 복지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선량한(?) '도깨비들'의 삶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리라. 성장도 좋고 개혁도 좋지만 최소한 사람이 생매장되듯 하는 저 헐벗은 막막함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깨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양심'들이 하는 소리다.

김진기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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