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변리사 시험에 나란히 합격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김앤장, 리인터내셔널 등 업계에선 손꼽히는 곳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스러운 연봉까지 남들이 보기엔 잘나가는 변리사였다. 그랬던 이들이 어느 순간 단체로 사표를 내곤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설립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특허법인으로 꼽히는 무한의 탄생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무한은 정태영, 이창훈, 천성진, 구기완, 송영건 다섯명의 변리사가 2002년에 만든 회사다. 명함만 내밀어도 알 만한 회사를 등지고 창업을 한 셈이다.
무한에서 상표파트를 총괄하고 있는 구기완 변리사(사진)는 "변리사라는 자격증이 있으니 일반 사업가보다는 불안감이 덜 했지만 일이 없어 사무실에서 멍하니 있을 때는 막막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법인명 무한은 한자로 '무한(無限)'을 뜻한다. 창립 멤버인 송영건 변호사가 제안한 이 이름은 '한계없이 패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구 변리사는 "회사 규모가 클수록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속품이 되기 쉽다. 우리 모두 그 느낌이 싫어서 나왔다. 한계 없이 일해서인지 무한의 성장 속도에도 한계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립 당시 30명이던 직원수는 현재 120명으로 늘었다. 무한의 주 영역은 상표와 특허 출원이며 분쟁은 전체 업무 중 30%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특허출원 건수는 국내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막강하다.
구 변리사는 "매번 일을 맡을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매달렸다. 그랬더니 그분이 다른 회사를 소개해주고, 또 연이어 소개가 들어오면서 일이 많아졌다. 지금은 하루종일 전화 한 통 없던 그때가 언제였나 싶다"고 회고했다.
구 변리사는 자타공인 '문과형 두뇌'를 가졌다. 대학교 입학 시험 성적에 맞춰 서울대학교 천연섬유학과에 진학했지만 책만 펴면 조는 날이 이어졌다. 문과로 전과하고 싶었지만 그나마도 학점이 나빠 포기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군대를 다녀온 뒤 우연히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게 됐는데 덜컥 합격을 했고 결국 '돌이킬 수 없이' 이과의 삶을 살게 됐다.
변리사 업계는 공대생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 속에서 구 변리사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것이 상표 출원 분야다. 그가 담당하는 일의 70%가 아웃고잉, 즉 해외 진출을 원하는 기업의 상표 출원을 맡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2004년 GS그룹 기업이미지(CI) 변경 때 심벌 선택부터 국내 상표 출원, 해외 상표 출원과 등록을 맡았다. GS그룹의 CI가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 데에는 구 변리사의 역할이 있었던 셈이다.
무한은 전기전자.통신.컴퓨터 분야와 기계.기계설계.장비 분야, 화학.화공.생명공학 분야, 상표 분야 등으로 업무를 나눠 효율적으로 인력을 운영하는 게 특징이다.
구 변리사는 "어떤 일은 어떤 사람이 잘할 것이다라는 편견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 도전해야 한다"면서 "나 역시 화학과를 나오긴 했지만 막상 실무에 돌입했을 때 자신이 없었기에 상표 쪽으로 능력을 키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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