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게임 중 욕설’.. 초성만 써도 처벌 받는다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09 17:48

수정 2014.10.28 13:18

‘게임 중 욕설’.. 초성만 써도 처벌 받는다

#. 5년간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H씨(39)는 평소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급적 자신의 PC방에 오지 말 것을 당부한다. 손님들이 게임을 하면서 내뱉는 심한 욕설이 가족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서다. H씨는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하면서 문자채팅을 하는가 하면 음성채팅이 지원되는 게임을 하면서도 심한 욕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주로 욕을 하는 고객들 대부분은 청소년들이지만 게임문화가 확산되면서 성인 이용객들에게서도 이러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B씨(28)는 인터넷 게임상 채팅을 하던 중 K씨(24)와 서로 욕을 주고받는 등 시비가 붙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K씨의 버릇을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에 K씨를 불러낸 뒤 폭행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혔다. 최근 법원은 B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온라인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익명성을 악용해 상대방에게 갖은 욕설을 퍼붓거나 비방하는 등의 인권침해가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이버 인권침해를 당한 경우 고소 등에 따른 사법절차 외에는 별다른 예방 및 구제책이 없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임 속 사이버 인권침해 급증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 업체 대부분은 내부 방침상 온라인 게임에서 일어나는 모욕 등 인권침해 범죄와 관련해 신고.제재 건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이 대중화하면서 상대방의 욕설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의 매커니즘이 모욕범죄를 부추기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한다. 기본적으로 컴퓨터가 아닌 상대방을 상대로 승리가 목적인 온라인 게임 특성상 성취욕구가 강할 수밖에 없어 목표가 좌절될 경우 분노표출이 욕설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 게임 대부분은 승패에 따라 게임아이템이나 게임머니가 달라진다"며 "게임에서 진 유저들이 마치 자신이 실질적인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게임 유저들의 빗나간 준법의식 역시 게임상 모욕죄 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불특정 상대방에게 욕하는 것을 단지 게임의 승리를 위한 심리전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욕설이 아니더라도 상황상 욕설로 간주할 수 있는 문자가 들어갔다면 이는 명백한 범법행위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센터 관계자는 "욕설의 초성을 따거나 금칙어를 살짝 비켜가는 표현을 썼더라도 채팅 화면의 전후맥락을 비교해 욕설이라고 판단되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응 한계… 근본대책 마련돼야

현재 게임 업체들은 과거 채팅창에서 화면캡처를 통한 복잡한 방식 대신 고객센터 등을 통해 간단히 버튼만 누르면 되는 신고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 게임산업진흥원의 권고에 따라 1000개 안팎의 금칙어를 설정, 욕설의 사전 차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상습적 모욕이 아닌 이상 일시적 계정압류 조치에 그치고 있고, 자음단순화나 각종 줄임말 등의 은어들을 낳기 쉬운 한글 특성상 현실적으로 유사 욕설까지 일일이 필터링하기에도 한계가 있어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컨텐츠진흥원 산업정책팀 이양환 연구원은 "정치권에서 게임을 '4대악'으로 규정하는 분위기에서 또 다른 규제는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업계가 적극적으로 캠페인 등을 통해 정화작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종 임상혁 변호사는 "게임상 욕설은 형법상 처벌 외에도 가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경우 손해배상 소송도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는 소위 '무명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수사기관이 고소인에게 범죄자의 신원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만큼 법적 대응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계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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