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여의나루] 버큰헤드 그리고 보스턴마라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9 16:47

수정 2014.10.28 02:35

[여의나루] 버큰헤드 그리고 보스턴마라톤

1852년 2월 27일 영국 해군의 자랑으로 여겨지던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사병들과 그들의 가족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항해하고 있었다. 병사 472명, 가족 162명이 타고 있었던 그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 배에는 구명보트가 3대, 보트당 정원은 60여명으로 구조 가능 인원은 겨우 180여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장이었던 세튼 대령은 병사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제군은 들어라! 가족은 그동안 우리를 위해 희생해 왔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보트에 태워라! 대영제국의 남자답게 행동하라!" 그리고 마지막 구명정이 안전하게 떠나는 것을 차렷자세로 지켜 보았다고 한다. 보트에 탄 가족들은 수백명의 병사와 함장인 세튼 대령이 의연하게 배와 함께 바다에 잠기는 것을 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당시 생존자는 어린이와 여성을 중심으로 193명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영국인들은 그 어떤 사고가 터져도 "버큰헤드 정신으로!"라고 외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버큰헤드 정신은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 때에도 빛을 발했다고 한다.

지난해 이맘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도 폭탄테러로 인한 대형 참사가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3명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부상했던 그 사고 후 1년 만인 올해 118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선 "테러에 지지 말자"라며 더욱 더 단단한 결속과 강한 보스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3만6000여명의 사상 최대 참가자 어디에도 불안감은 없었고 폭탄테러의 후유증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사고로 다리를 잃은 마라토너는 무엇을 위해 또다시 보스턴을 달렸을까?

지금 우리 온 국민은 울고 있다. 그나마 지난 십여일 동안은 구조작업에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그 작은 희망도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열일곱 안팎의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선실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안쓰러워 잠이 안 온다. 어쩌면 참사의 아픔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우리에겐 버큰헤드의 세튼 함장과 그 병사도, 타이태닉호의 스미스 선장도 없기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참사 때마다 보여주는 또 그대로인 우리 모습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알토란 같은 우리 아이들이 벌건 대낮에 배에 갇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못하는 어른들이기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3000여개가 넘는다는 비상대비 매뉴얼이 다 무엇이며 안전행정부는 무슨 소용이던가? 정부에 대한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시중에는 각종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니며 일부 언론들도 여기에 한몫 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스미싱 상술까지 난무하는 데는 슬픔보다 공분이 앞선다. 어느 주간지 칼럼 제목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게 무슨 국가인가?'

염치없는 국가여도 우리나라다. 이제는 안 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하나?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수습되는 그날 우리 어른들은 무릎 꿇고 사죄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 새롭게 시작하자. 물론 이번 사태에 관련돼 잘못한 사람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정책·제도· 관행들도 고쳐야 할 것이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정부·기업·감독기관 간의 유착도 끊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자신 스스로 국가에, 공동체에 대해 허약한 책임과 신의를 가졌음을 자각하고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국가에, 사회에 대해 무한의 책임의식을 갖고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나가자.

그리고 지긋지긋한 삼류 쓰레기들은 털어버리자.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격을 갖춘 나라를 만들자. 이런 세상이 오면 그날 우리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다시 보내주자.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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