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명의 부상자를 낸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 사고 열차가 20년 넘은 노후 차량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정부가 철도차량의 법정 내구연한을 연장했다 아예 폐지하고,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정비인력을 감축하면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비용절감이 대형사고를 부를 뻔했다는 것이다.
서울 메트로는 2일 사고를 낸 뒷 열차인 2260편은 1990년, 앞 열차인 2258편은 1991년 제작돼 모두 20년 이상된 차량이라고 밝혔다. 이날 사고는 차량 내 안전거리장치의 진행신호가 갑자기 정지신호로 바뀌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추정돼 차량 노후에 따른 기계 결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수도권 철도는 20년 이상 된 노후 차량이 10대당 1대에 이른다. 수도권 지하철 이용객은 1~4호선만 따져도 하루 평균 384만명에 달해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국토교통부의 집계에 따르면 수도권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 메트로와 코레일, 도시철도공사 보유 광역철도차량 6024대 중 20년 이상의 차량은 14.6%(881대)에 달했다.
이중 서울메트로가 20년 이상의 노후차량이 가장 많아 전체 1954대 가운데 23.8%인 466대가 20년 이상이었다. 11~15년된 차량도 13.3%(330대)를 차지했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2009년 철도차량 내구연한을 25년으로 정하고 정밀진단을 통과하면 5년씩 최대 15년까지 연장해 사실상 내구연한을 40년까지 늘리는 내용으로 철도안전법을 개정했다.
2012년에는 이 내용이 명시된 37조가 아예 삭제됐다. 또 철도 종사자들이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을 받도록 한 24조도 폐지됐다.
정부는 차량 환경이 각각 달라 내구연한을 두는 게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도태 시기를 늦출 수 있는데다 평소 안전점검체계를 강화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의 경우도 선박 내구연한이 연장되고 실제 안전점검은 규정과 달리 허술하게 이뤄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한 관계자는 “과거 연한 기준 때도 지금보다 충실하게 일상점검이 이뤄졌고, 차량이 노후될 수록 고장도 잦고 기관사들은 크고 작은 이상신호를 자주 느낀다”며 “차량 내구연한을 없애버린 것은 웬만한 큰 사고가 안나면 계속 손질해서 전동차를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며 사실상 사고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도 노후차량 교체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공기업에 대한 경영정상화 압박이 강해지면서 예산 투자에 인색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영효율화를 명분으로 한 인력 감축도 사고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정비인력이 줄어들면서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성 적자에 따라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아온 서울 메트로는 2008년 안전행정부와 서울시의 공기업·산하기관 경영개선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를 추진, 전동차 정비인력을 코레일의 2배 이상이던 1대 당 1명에서 0.8명으로 조정했다.
서울지하철노조에 따르면 이때 정년퇴직으로 빈 인력을 뽑지않은 것을 포함해 정비인력 359명이 줄어들고 120명이 위탁업무로 전환되면서 2000년 2642명이던 전동차 정비인력은 2009년 2082명까지 줄었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에는 인력 감축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인력감축과 연동해 당시 정비점검 매뉴얼도 개정돼 차량에 따라 2개월에 1번 받도록 규정된 것은 3개월, 2년 주기 점검 대상은 3년, 4년 주기는 6년으로 각각 연장됐다.
현장 정비직 직원들은 숙련도와 경험이 중요한 정비인력이 일부 위탁화되면서 잦은 인력 교체와 팀워크 하락 등으로 정비점검이 이전에 비해 빈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하철 노조 관계자는 “노후차량 운행과 2008년 단행된 대대적인 인력 줄이기, 차량 정비·검수 분야 위축의 후유증이 이번 지하철 추돌 사고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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