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드라기를 파격으로 내몰았을까. 지난달 유로존 물가는 전년 동기비 0.5% 상승에 그쳤다. 그 전달의 0.7%보다 더 낮아졌다. 인플레이션 목표치(2%)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드라기는 유럽 경제가 일본을 닮지 않을까 우려한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사무라이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 저물가·저성장의 디플레이션은 시나브로 경제를 골병들게 한다. 드라기가 급히 칼을 빼든 이유다.
마이너스 금리는 돈을 돌게 하는 효과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CB는 제로금리 정책을 펴 왔다. 하지만 돈은 은행 금고에 잠겼다. 일부는 중앙은행으로 역류했다. 기업들은 살아남는 데 급급했고, 은행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제 몸 추스르기도 바빴다. 금리를 낮춰 경기를 살리려던 ECB의 의도는 무산됐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을 채찍질함으로써 민간의 자생력에 숨을 불어넣으려는 고육책이다.
드라기 실험의 성패는 미지수다. 사실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푸는 양적완화(QE) 정책은 마이너스 금리보다 더 파격적이다. 그러나 미국·일본 경제는 기대만큼 강한 복원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되레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만 커져 간다. 특히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디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올 들어 국내 물가는 1%대에 머물러 있다. 5월의 경우 1년 전 같은 달에 비해 1.7% 올랐다. 유로존보다는 낫지만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5∼3.5%)를 여전히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추세적인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은 수입물가를 더 떨어뜨릴 확률이 높다. 정부와 한은은 물가동향에 비상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투자 부진 역시 유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대기업들은 돈을 쌓아 놓고 눈치만 본다. 대통령과 부총리가 아무리 투자를 호소해도 환경이 나쁘면 기업들은 선뜻 나서지 않는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나왔지만 아직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외부여건이 불확실한 만큼 고용창출 효과가 큰 내수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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