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발레단이 집이다. 진짜 집에선 잠만 잔다"고 했다. 아내도 맞장구를 쳤다. "발레단에 와야 화장실을 갈 수 있어요. 발레단 자판기 커피를 마셔야 하루가 시작됩니다."
유니버설발레단(UBC·단장 문훈숙) 간판 무용수 엄재용(34)·황혜민(35) 부부에게 발레단은 가정이자 밥이자 친구다.
학창시절 예비 스타로 꼽혔던 둘은 서로 존재를 알긴 했지만, UBC 입단 전까지 한지붕 아래에서 마주한 적은 없었다. 발레단에서 비로소 애틋한 감정을 키워 10년 연애 끝에 2년 전 결혼에 골인했다.
황혜민은 입단 이듬해인 2003년 발레 '지젤' 주역을 처음 맡았다. 엄재용은 그때 본 '황혜민 지젤'을 잊지 못한다. "제가 본 최고의 지젤이었어요. 처음 한 지젤이었는데 처음 한 것 같지가 않았어요. 혜민이는 연습 때도 실제처럼 해요. 집중력이 엄청납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제가 지칠 정도예요."
황혜민은 발레 모든 레퍼토리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지젤'이다. 드라마의 결을 잘 살리는 그는 고도의 연기력을 요하는 지젤의 성향과도 잘 맞다. '지젤'은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를 사랑한 순박한 처녀에서 출발해 청년의 배반으로 광기 어린 여인이 됐다가 다시 위기에 빠진 알브레히트를 끝까지 지키며 변신을 거듭한다. "음악이 대사 같아서 음악 해석을 잘해야 해요. 연기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거울 보고 연습하는 게 다가 아니라 상상을 잘해야 합니다." 황혜민은 문훈숙 단장의 '지젤'을 교본으로 삼았다고 했다.
상대역 알브레히트는 2막 마지막 25분 불꽃 같은 테크닉을 발휘한다. 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빠르게 발을 교차한 뒤 내려오는 동작 앙트르샤 시스를 엄재용은 한번에 40회 이상 해낸다. "알브레히트는 1막과 2막 초반까지 하는 일이 많지 않아요. 2막에서도 시작 후 20분이나 쉬다 나옵니다. 하지만 2막 첫 등장부터 중요해요. 지젤에 대한 미안함, 자책감, 그때 다 표현합니다. 음악도 기가 막힙니다. 그 뒤 25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서 다 보여줘요." 엄재용은 "여유 있다가 갑자기 숨차고 힘들어지는 캐럭터가 알브레히트"라며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은 무대에선 정열의 무용수로 혼을 다 빼지만, 평소엔 소탈한 말투에 차분한 성격이다. 부부라서 닮았다기보다, 닮아서 부부가 된 게 아닐까. 무용수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부부는 천천히 쉬어 갈 준비도 한다. 황혜민은 출산을, 엄재용은 가장의 책임을 요즘 주제로 삼고 있다며 서로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이들이 출연하는 '지젤'을 곧 볼 수 있다. UBC는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지젤'을 무대에 올린다. UBC 무대는 푸른 달빛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무도 큰 볼거리다. 이 공연으로 강미선, 김채리, 이용정은 처음 지젤로 데뷔한다. 국립발레단 출신 김주원은 UBC 상임 객원 수석무용수 자격으로 무대에 선다. '엄-황' 커플이 출연하는 날은 15·17일. 5000∼10만원. 1544-1555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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