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형식칼럼] DTI 막전막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19 17:01

수정 2014.06.19 17:01

[현형식칼럼] DTI 막전막후


2005년 7월 말의 어느 일요일 새벽 5시. 청와대(BH)발로 긴급 경제관계장관 회의 소집을 알리는 휴대폰 문자가 떴다. 일정만 오전 8시로 정해졌을 뿐 내용은 없었다. 부동산 대책이라는 사실이 회의 참석 몇 분 전에 고지됐다.2002년 도입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로도 부동산 광풍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은 데 따른 것이었다. 빚을 내 집을 사는 강남 복부인 식의 레버리지 투기를 막는 LTV규제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부동산 광풍의 핵은 강남 3구였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어린아이 손을 잡고 은행 문을 두드렸으니 백약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대통령이 부동산에 관한 한 워낙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터라 웬만한 아이디어로는 설득이 안됐다고 한다.

8월 9일 금융 당국자에게 총소득 대비 돈을 빌려주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미국 부동산 열풍을 잡았다는 일화를 농담 삼아 들려줬다. 단 조건은 한시적이어야 한다고…자칫 부동산 경기는 물론 내수 장기침체로 몰아넣을 위험성이 크다는 말도…. 이 당국자는 '그런게 있나'라고 반신반의하며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여 지난 14일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DTI 도입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시장을 너무 경색시킬 수 있으니 LTV를 강화하든지 다른 방안을 다시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날의 칼이었던 DTI 도입 불가론이 우세했다. 28일 대책회의에서도 DTI 외에는 뾰쪽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DTI로 부동산 잡는다'는 기사가 뜬금없이 나왔다. 정부는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음'이라는 한 줄짜리 해명자료를 내고 노 대통령을 장시간 설득한 끝에 이틀 후인 31일 부동산 종합대책안에 DTI를 넣어 서둘러 발표하게 됐다. DTI라는 칼이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하고 사장될 뻔한 순간이었다.

당시 대책안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거나 30세 미만의 자녀가 투기지역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담보물건 제공과 DTI 40%를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창구지도를 통해 시행하고 규정은 추후 보완했다.한국은행을 제치고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총액대출을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계기도 이때부터다.

DTI 도입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동산 광풍을 잠재우고 금융회사 재무 건전성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반면 부실 건설사 퇴출과 부동산 장기침체를 불러왔고 빚이 많은 다수의 주택 보유자들을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몰아넣은 후유증도 양산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침체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는 현재 서울 50%, 인천·경기 60%, 생애최초구입자 미적용으로 되어있는 DTI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완화 차원을 넘어 심지어는 폐지론까지 고개 들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선진 금융시장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분위기다. 더구나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DTI 완화를 통해 돈을 푸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살리겠다니 심히 우려된다.
자기 돈 한푼 없이 주택을 구입해 잘만하면 재산을 서너 배 너끈히 불릴 수 있다는 허영심을 다시 키울 셈인가. DTI를 통해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꼭 살려야 한다면 시장원리로 풀어야 한다. 부동산은 로또가 아니다.
DTI가 어렵게 세상 빛을 본 만큼 금융시장의 마지막 보루로 지켜내야 하는 이유다.

neth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