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부장검사 출신 서민 변론 앞장 김경진 변호사 “말바우시장 동네 변호사 자랑스런 별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23 17:42

수정 2014.06.23 17:42

부장검사 출신 서민 변론 앞장 김경진 변호사 “말바우시장 동네 변호사 자랑스런 별명”

통상 '법조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금테 안경에 샤프한 얼굴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모범생 같은 분위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김경진 대표변호사(49·법무법인 이인·사법연수원 21기.사진)는 일단 그런 '모범생 인상'과는 거리가 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얼굴에 넉넉한 풍채, 약간 어눌해 보이기도 한 말투까지….

법조인이라기보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나 학교 앞 문방구점 주인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난 사람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20대 초반 사법시험에 합격해 30대 후반에 이미 부장검사를 역임하는 등 한때 잘나가는 검사였고 지금은 중견 로펌의 대표 변호사인 데다 주요 방송사 뉴스의 단골 출연자라고 그를 소개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그런 '오해'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분위기에 조금은 자랑스러워 하는 듯한 느낌이 읽힐 정도다.

지금은 사무실을 옮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광주 말바우시장 근처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카카오톡 등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말바우시장 동네 변호사'라는 별명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기도 했다.

촛불시위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된 시민들에 대한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말바우시장 동네 변호사'라는 이름에 더 애정이 간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 여건상 말바우시장에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법원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다"며 근황을 전하는 그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날 정도였다.

잘 나가던 부장검사로 서울에서도 꽤 이름 있는 로펌을 운영하던 그가 지방 변두리 시장통 변호사에 이처럼 애착을 가지는 것은 그의 어린시절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렇듯 초등학교 때에는 온몸이 마비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바람에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친구들과 등교를 하다 교문 앞에서 줄행랑을 놓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다 들켜 혼쭐이 난 적도 있고 고교 때에는 동기 65명 가운데 입학성적이 55등이었을 만큼 공부를 잘하는 것도, 모범생도 아니었다고 멋쩍은 미소로 실토했다.

그 무렵 김 변호사의 꿈은 천체 물리학자로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는 학자가 되는 것. 그의 고향인 전남 장성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예나 지금이나 유리알같이 반짝이는 별들이 한가득이었고 그 별을 보면서 어린시절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꿈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장손이었던 그에게 집안 어른들이 법대 진학을 권유하는 바람에 진로가 크게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블로그에 올린 글 가운데 절반 정도가 과학.천문에 관련된 것들일 정도로 관심이 각별하다.

그가 올린 글 가운데에는 최근 물리학계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반물질'에 대한 것이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조예도 깊다.

"컬러 TV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원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역사를 바꾸는 사례가 많다"는 그는 "과학 발전이 인류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혹시 그쪽 방면으로 인생 경로를 바꾸는 것 아니냐며 "부인께서 들으면 놀랄 것 같다"라고 하자 "집사람은 영원한 내편"이라며 여유를 부리는 김 변호사는 대학시절 미팅으로 만난 부인 김경란 교수(광주여대 유아교육과)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