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특별취재팀】 폐타이어 조각들을 옮겨 싣느라 포클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충남 아산의 한 공장. 타이어를 재활용하는 자원재생 전문기업 스틸앤리소시즈다. 폐타이어 조각들이 굉음을 내는 기계 속에 들어가자 더 작은 조각들로 분쇄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한 곳에 모인다. 잘게 부순 타이어들을 다시 최종 분리기 속에 집어 넣으면 고무와 철심이 분리돼 나온다. 타이어 속에 들어 있는 철심의 양은 전체의 약 13~17%.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철과 고무가 붙어 있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폐기물이지만 둘을 분리하면 훌륭한 자원이 된다.
그런데 공장 한쪽에 육중한 기계설비가 조용히 멈춰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공장 건물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거대한 시설이다. 이것이 월 1만t의 타이어를 처리해 철심을 최종 분리해낼 수 있는 규모의 기계설비다.
스틸앤리소시즈가 2년 전 완성한 신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이 기계설비가 멈춰있는 이유는 어이없게도 관련 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폐기물를 처리하는 데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어떤 폐기물을 어떤 과정으로 처리. 재활용해야 한다는 구체적 내용이 명시돼 있다. 법에 규정되지 않은 다른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폐타이어의 경우 소각해 연료로 쓰거나 고무를 재활용할 수 있을 뿐 폐타이어에서 철심을 분리해 사용하는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기술은 스틸앤리소시즈가 개발한 신기술이니 법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법은 48가지 재활용 방법을 규정해 놓아 신기술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만들어놨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도 적용하려면 그때 그때 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스틸앤리소시즈 최윤선 부회장은 "기술 개발 당시 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밀어붙인 것은 국가적으로 당연히 물적 재활용이 돼야 하니까 법은 건의를 하면 금방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지부동"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때문에 이 공장은 한번도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다. 신기술은 기존의 재활용 촉진제도인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타이어 제조회사로부터 폐타이어를 공급받아 재활용할 조건을 맞출 수 없었다.
EPR 제도 아래에서 타이어의 거의 대부분은 시멘트 공장의 연료로 사용된다. 태우고 남은 철심 찌꺼기는 산화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철심을 분리해 내면 태워 없앨 필요가 없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데도 신기술은 적용되지 못한다. 이 업체는 기계를 돌리려고 폐타이어를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놓였다. 월 3000t 정도를 수입해 온다.
관계기관과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개정법이 제출돼 있지만 현재까지 논란만 거듭될 뿐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한해 30만t 이상 버려지는 타이어가 거의 대부분 태워지고 있는데 고무와 철심만 분리하면 재활용할 수 있다"며 "철과 고무는 둘다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잘못된 EPR제도 때문에 시멘트 공장에서 태우는 것만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냉장고 중 규제받는 것은 프레온가스뿐인데 법은 냉장고 전체를 규제한다. 재활용을 환경규제로 보면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며 "규제는 환경이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재활용을 규제하면 환경이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폐기물 법 때문에 고통받는 곳은 또 있다. 서울 송천동 광양자원. 흔히 말하는 고물상이다. 이곳 운영주 왕경애씨는 "여기서(서울 송천동)만 10년 넘게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을 자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가전제품도 우리가 재활용할 수 있도록 열려 있었는데 지금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폐기물 관련법이 너무 규제가 많아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제한돼 있다는 호소다.
왕씨는 "국회에서 통과가 지연되고 있는 '자원순환기본법'은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재활용 일을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며 "대학 교수 같은 사람과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모여 앉아서 탁상공론 같은 정책만 시행하고 있으니 더 힘들어진다"고 털어놨다.
왕씨가 '자원순환기본법' 통과를 바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고물상이 도시의 흉물이 아니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곳으로 인식되기를 바라서다. 그는 "폐기물을 그냥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우리 같은 고물상의 손을 거쳐서 분해하고 모으면 하나의 자원으로 변한다. 고물상이 하는 일이 그런 것"이라며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줬으면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원 재활용하는 범위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이두영 부장 김기석 전용기 최경환 김학재 김미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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