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겸손은 헌신과 지도력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끄러운 팡파르를 울리지 않고도 일을 해결해 나가는 조용한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8대 사무총장에 당선된 후 가진 수락연설에서 '겸손'을 강조했다. 이는 기존에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강조했던 분위기를 대신할 '아시아 리더십'의 등장을 선언한 상징적 사건으로 반 총장의 수많은 연설 중 최고로 꼽힌다.
2007년 1월 정식 취임 후 반 총장은 지금까지 수락연설에서 공언한 바와 같이 '조용한 결단력'을 앞세운 '따뜻한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있다.
■타고난 관운, 업무는 '워커홀릭'
반기문 총장은 36년간의 외교관 시절 휴일과 밤, 낮을 잊은 '워커홀릭'으로 이름이 높았다. 해외 출장 중에는 비행기 이동시간을 숙박 일정으로 대체하고,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소소한 일까지 직접 챙기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스타일로 상관의 신임과 후임의 존경을 모두 받았다. 반 총장과 함께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내뱉지 않는 성격 탓에 '예스맨'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이는 반 총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겉으론 부드럽지만 강단과 고집을 갖춘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리더십을 갖췄다"고 떠올렸다.
반 총장은 충주고 재학 시절인 1962년 미국 정부 주최 영어 웅변대회에 입상,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만난 뒤 외교관에 대한 꿈을 키우며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외무고시 3회에 합격해 외무부에 입부한 반 총장은 국제연합과 차석, 유엔대표부 1등서기관, 국제연합과장 등으로 유엔에서의 경험을 축적했다.
또 외교부 내 핵심인 북미국장, 주미대사관 공사, 외교정책실장, 차관보, 차관과 청와대 외교보좌관, 외교안보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화려한 관운을 자랑하게 됐다.
위기도 있었다. 외교통상부 차관이었던 2001년 4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문제를 둘러싼 한·미 외교갈등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차관급보다 아래로 평가받는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며 '백의종군'했지만 오히려 유엔과 인연을 쌓는 기회가 됐다.
2004년 반 총장은 전임 윤영관 장관이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 비하발언 파문으로 낙마하자 장관에 전격 발탁돼 다시 한번 관운을 과시했다. 같은 해 6월, 지금도 외교부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평가받는 이라크 김선일씨 납치·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장관으로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으로 극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극적인 드라마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에 오른 일이다. 아프리카 출신인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 순서가 돌아와 한국 출신의 당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유력한 후보는 총장 도전을 공공연하게 선언했던 홍석현 당시 주미 대사로 당선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그러나 홍 전 대사가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예기치 않게 낙마하자 반기문 당시 외교장관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탁월한 업무능력과 원만한 대외적 평가가 끝까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시리아·이라크 사태해결이 성공 좌우
2007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반기문 총장은 5년간 아프리카 등의 분쟁 지역과 재난 현장을 누비며 구호와 평화 안착에 힘썼다. 이런 노력은 2011년 6월 대다수 유엔 회원국의 지지 속에 연임 성공으로 이어졌다.
반 총장은 두번째 수락연설에서 "192개국에 달하는 유엔 회원국들은 모두 제각기 본국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 매번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회원국들 사이에서 '다리를 만드는 자(bridge builder)'의 역할을 하고자 힘썼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 된 후 이 세상에 매우 많은 문제와 비참한 현실이 존재함을 알게 됐다. 전 세계의 빈곤한 자와 병든 자들에게 한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서서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이루어냈다며 그들을 위로하곤 했다"며 국제사회의 노력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사무총장 임기는 64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내민 손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이다.
현재 유엔은 국제적 과제로 인권, 식량·에너지, 지속가능한 개발, 기후변화, 테러리즘, 지역 분쟁, 핵 비확산 등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특히 시리아 내전이 이라크로 확산되며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된 것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와 관련, 지난달 20일 뉴욕타임스는 반 총장이 '임기 중 가장 암울한 시기(the bleakest chapter of his tenure)'를 맞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라크 서북부를 장악한 수니파 과격 무장세력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는 시리아까지 세력을 두는 조직이다. 시리아에서 이 조직은 서구에 세습 독재자로 낙인 찍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하는 시리아 반군의 일부였다. 이 조직이 이라크 공략에 열중해 시리아에서 조직원들을 데려가면서 반군 세력의 대항이 약해지자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반군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국 대사관과 주민 보호를 내세운 미국과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개입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이 지역은 중동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의 2기 반기문 체제에 대한 평가는 이번 사태의 원만한 중재와 해결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국내외 외교가는 전망하고 있어, 앞으로 반 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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