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늘이 저렇게 넓은데 왜 비행기 사고가 날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행기(여객기 기준)가 일반적으로 시속 800∼1000㎞로 하늘을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게 항공교통의 현실이다. 항공 사고는 한꺼번에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고예방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항공교통센터(ACC)는 우리 영공에 떠다니는 모든 비행기의 교통 전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하늘의 교통경찰서'다. 이곳에는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대한민국의 하늘길을 안내하는 100여명의 항공교통관제사가 밤낮을 잊은 채 24시간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 영종도(인천)=윤경현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내 항공교통센터. 시계바늘이 오전 8시40분을 가리키자 주간근무조 관제사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의 일과는 날씨 브리핑으로 시작됐다. 기상청 관계자가 직접 고도별 바람의 방향과 세기, 구름 상황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비행기가 그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어서 팀장과의 간단한 미팅이 이어졌다. 팀장이 야간근무조로부터 전달받은 각종 정보를 다시 설명하고 오늘 특히 신경써야 할 사항 등을 고지한다. 그리고 음주측정이 진행됐다. 경찰의 음주측정 단속기준보다 높아 혈중 알코올농도가 0.04%를 넘으면 그날은 업무에서 배제된다. 박순건 관제기획계장은 "음주로 인한 피해가 일반 교통사고와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관제사들이 스스로 조심한다"며 "실제 음주단속에 걸리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수=재난' 고도의 집중력 요구
항공교통센터의 관제사는 모두 6개팀으로 이뤄졌다. 매일 오전 7시와 9시, 오후 2시와 6시에 각각 1개팀씩 총 4개팀이 투입된다. 나머지 2개팀은 대기조다.
항공기가 뜸한 야간시간대(오후 9시30분∼오전 7시)를 제외하고는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2개팀이 함께 근무한다. 명절이나 공휴일 등 쉬는 날이 많을수록 관제사들은 더 바쁘다. 국내외 여행객이 그만큼 늘어나고 하늘길의 정체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경력 27년의 베테랑인 윤여성 팀장(48)은 "관제사는 비상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1시간 이상 계속해서 근무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윤 팀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후 '남의 일이 아니다'는 생각에 심리적 부담이 더 커졌다"면서 "항공사들의 안전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사고 가능성은 열려 있는 만큼 때로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가 갓 넘은 시간이지만 윤 팀장 앞에 놓인 레이더 화면은 민간 항공기를 표시하는 '하늘색 점'과 군용기를 의미하는 '하얀색 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간 항공기만 51대였다. 윤 팀장은 "그나마 위쪽 하늘의 날씨가 좋지 않아 시계비행을 하는 군용기가 평소보다 훨씬 적게 나타난다"며 "맑은 날에는 군용기의 움직임이 크게 늘어 하늘길이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중국.일본과 주고받은 협조요청 내용이 나타났다. 중국 측은 우리에게 중국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대해 3분 간격을 유지해줄 것을 요청했고 우리는 일본에 우리 영공을 거쳐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대해 8분 간격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윤 팀장은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항공기가 항공로에 추가될 것을 감안해 일본 측에 간격을 크게 잡아달라고 요청했다"며 "미리 예측해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빈번하게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잠시 뒤 레이더상의 항공기는 63대로 늘었고 빨간색으로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충돌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윤 팀장은 "군용기 두 대가 편대비행을 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실제 위험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항공기의 경우 자체 충돌방지 기능이 있고 레이더에도 같은 기능이 있어 하늘에서 충돌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윤 팀장은 지난 1987년 공군에 들어가 관제업무를 처음 맡은 뒤 1995년 지역관제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로 넘어오면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부단히 노력을 하지만 관제사도 사람인지라 365일 내내 100% 철저할 수는 없다"며 "실수할 경우 수백명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어 '오래 할 일은 못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력 7년의 최재문 관제사(39)는 한국공항공사 항공기술훈련원을 거쳐 지난 2007년 10월 항공교통센터에 들어왔고 부단한 노력 끝에 2009년 11월 남들보다 6개월가량 빨리 레이더관제사가 됐다. 그는 "어릴 적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아 조종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관제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하루 1700여대 하늘길 교통정리
우리나라 영공에 그려져 있는 항공로는 모두 38개다. 나머지는 군의 훈련공역이거나 비행금지구역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 항공로를 따라 이동하는 항공기는 하루 평균 1700여대에 달한다. 지난 5월 2일에는 1888대로 사상 최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김포∼제주를 잇는 하늘길의 정체가 가장 심하다. 윤 팀장은 "세계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노선 가운데 하나가 김포∼제주 노선"이라며 "하루에 약 400편이 이용하는데 항공안전장애의 80%가 이 노선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박 계장은 "같은 고도에 있는 항공기 간 거리는 최소 9㎞ , 같은 항공로상에서는 고도가 330m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면 항공안전장애로 분류된다"고 거들었다. 대형 항공기가 지나간 뒤 발생하는 후방 난기류(웨이크 터뷸런스) 탓에 최고 간격을 정해놓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휴가철에는 오전 4시30분∼6시30분에도 하늘길이 붐빈다. 동남아에서 들어오는 항공기 70∼80대가 몰리기 때문이다. 최 관제사는 "붐빌 때는 혼자서 20여대의 관제를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면서 "항공기에 지시를 내리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윤 팀장은 "항상 정해진 항공로를 다닐 수는 없고 간격 유지를 위해 항공로에서 살짝 이탈시켰다가 제자리로 돌려놓기도 한다"며 "조종사 모두가 꺼리는 구름을 만나는 상황에서 15대가 서로 이를 피해가려고 하는 바람에 교통정리에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꾸준히 증가하던 항공기는 10시40분이 되자 78대가 됐고 레이더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하늘색, 하얀색 점으로 빼곡히 들어찼다. 윤 팀장은 "관제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하늘길의 하루 교통량은 500∼600대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3배가 됐다"며 "특히 저가항공사가 늘면서 항공기 편명이 다양해지고 정찰기 등 군용기도 증가함에 따라 관제사들의 머릿속이 훨씬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하늘에 떠 있는 항공기(군용기 제외)가 95대를 넘으면 경계단계, 105대가 넘으면 심각단계다.
심각단계에는 대기관제사들이 소집된다. 실제로 박 계장도 24년을 관제사로 일하다 지금은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데 여전히 관제사 자격을 유지하고 있어 급할 때면 직접 관제업무를 돕기도 한다. 윤 팀장은 "관제사의 일이라는 게 잘 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취급받고 표시도 안 나지만 잘못하면 '재난'이 된다"면서 "아무리 잘 해도 칭찬받는 일은 없고 우리끼리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정도"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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