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격이 1000원선마저 위태롭자 한국경제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정부의 4% 성장목표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아우성이다. 원화 강세로 기대됐던 '낙수효과'(내수 회복)도 신통치 않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세 자릿수 시대에 대비해 한국경제의 근본 체질 개선을 주문한다.
■이유있는 원화 강세
원화가 유독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다른 통화에 비해 안전 자산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달러화는 양적완화 축소보다 경제 부진의 영향을 받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양적완화로 엔저(엔화 약세) 정책을 펴고 있다.
달라진 한국 경제의 체력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5월 경상수지는 93억달러 흑자로 27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유지했다. 이는 직접적으로 외화 공급 확대를, 간접적으로 대외 신인도 제고(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을 통해 원화가치를 끌어 올린다. 3543억달러에 달하는 탄탄한 외환보유액도 환율 강세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환율 세 자릿수 시대를 예고하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올 연말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975원으로 보고 있다. 모간스탠리는 내년 1·4분기와 2·4분기 환율 전망치를 각각 980원, 960원으로 잡았다. 올 4·4분기 환율은 1000원으로 내다봤다. HSBC홀딩스는 내년 1·4분기 환율 전망치를 995원까지 끌어내렸다. BMO캐피털마켓도 올 4·4분기와 내년 1·4분기 환율 전망치를 995원, 990원으로 각각 예상했다.
그러나 아직은 환율이 딱히 어느 쪽으로 움직인다고 단언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환율에는 당사자 양국은 물론이고 그 외의 대외관계가 종합적으로 녹아든 데다, 시장 밖에서 정부의 개입여부도 관건이기 때문이다.
■경제 체질 개선 기회로 삼아야
원화강세는 한국경제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탓이다. 실제 한국은행의 국민소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품 수출액은 원화 기준 687조8310억원으로 2012년보다 2조9235억원 감소했다. 원화 기준 수출액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새 국제기준(가공무역 계상방법 등이 변경)에 따른 통계를 비교할 수 있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완화강세로 채산성이 나빠졌다는 얘기다.
연구기관들도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달러 환율 1000원, 엔.달러 환율 100엔일 경우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기계(-7.5%), 자동차(-6.4%) 전기전자(-3.8%) 등의 수출 감소폭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연평균 100엔당 1000원선에 머물 경우 총수출이 약 7.5%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 가치 급등으로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내수와 수출이 동반 침체될 경우 한국 경제는 경기 확장세가 일시 둔화되는 '소프트 패치'가 아니라, 경기회복 국면에서 다시 침체에 빠지는 '더블딥'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에 따른 '낙수효과'(내수 회복)도 예전 같지 않다.
한편에선 고환율에 대한 엄살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선까지 떨어지더라도 국내 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말보다 0.35%포인트밖에 줄지 않는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엔.원 재정환율은 1000원대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다만 한은은 외환 변동성이 너무 커져 쏠림현상이 생기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이제는 환율 세 자리 시대를 대비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가 달러를 풀어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금리정책 등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며 환율 변동의 완급을 어느 정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기업은 그동안 누렸던 고환율 정책의 단맛을 잊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주체들이 원고.엔저를 직면한 경제 여건으로 인식해 다각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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