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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대부’ 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누구인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1 17:39

수정 2014.10.25 07:43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앞줄 왼쪽 첫번째)의 라면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라면수프를 좀 더 맵게 만들어 달라고 직접 전화해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영애 박근혜씨(오른쪽 두번째)와 함께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앞줄 왼쪽 첫번째)의 라면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라면수프를 좀 더 맵게 만들어 달라고 직접 전화해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영애 박근혜씨(오른쪽 두번째)와 함께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지난 10일 별세한 삼양식품의 전중윤 명예회장은 '라면의 아버지' '라면의 원조' '라면의 대부' '라면의 역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전 명예회장은 지난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국내 식량자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결과 식량문제 해결방안으로 라면을 생각해 냈고 마침내 1961년 삼양식품을 창업했다. 당시 주무부처인 상공부를 설득해 5만달러를 할당받아 라면을 생산했다.

그는 곧 일본으로 건너가 기계도입과 무상 기술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이 때 기계수입 대금으로 받은 5만달러 중 기계 도입을 하고 남은 2만3000달러를 다시 정부에 반납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기업인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다.

지난 10일 타계한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왼쪽 첫번째)이 생전에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삼양라면 공장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 10일 타계한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왼쪽 첫번째)이 생전에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삼양라면 공장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초 국민에게 널리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쇠고기와 우유의 생산 공급원인 '대관령 목장'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대관령 목장은 라면 수프용으로 쇠고기 등 육류를 공급하고, 젖소를 사육해 완전식품인 우유와 유제품을 생산하며 우리 식생활의 발전을 가져오고 국민보건 향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업종 다각화를 골격으로 경영 다각화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라면 이외에 스낵, 유가공, 장유, 식용유, 축산업, 농수산물 가공 등 식품을 중심으로 한 관련사업을 대폭 확장해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경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9년 말 발생한 '우지사건'은 8년여의 긴 법정투쟁 끝에 마침내 1997년 8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당시 화의경영도 무난히 극복하며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루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기능성 식품, 장수 식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라면을 제조할 때 천연원료만 고집한 생산과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품공급에 노력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는 경영정상화 이후 대관령 목장을 관광단지로 개발해 사업부문별 구조 조정, 수익성 제고를 바탕으로 한 내실경영 등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장남인 전인장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 후 전 명예회장은 월 1~2회 대관령 목장을 방문했으며 독서와 집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