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별세한 삼양식품의 전중윤 명예회장은 '라면의 아버지' '라면의 원조' '라면의 대부' '라면의 역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전 명예회장은 지난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국내 식량자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결과 식량문제 해결방안으로 라면을 생각해 냈고 마침내 1961년 삼양식품을 창업했다. 당시 주무부처인 상공부를 설득해 5만달러를 할당받아 라면을 생산했다.
그는 곧 일본으로 건너가 기계도입과 무상 기술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1970년대 초 국민에게 널리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쇠고기와 우유의 생산 공급원인 '대관령 목장'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대관령 목장은 라면 수프용으로 쇠고기 등 육류를 공급하고, 젖소를 사육해 완전식품인 우유와 유제품을 생산하며 우리 식생활의 발전을 가져오고 국민보건 향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업종 다각화를 골격으로 경영 다각화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라면 이외에 스낵, 유가공, 장유, 식용유, 축산업, 농수산물 가공 등 식품을 중심으로 한 관련사업을 대폭 확장해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경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9년 말 발생한 '우지사건'은 8년여의 긴 법정투쟁 끝에 마침내 1997년 8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당시 화의경영도 무난히 극복하며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루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기능성 식품, 장수 식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라면을 제조할 때 천연원료만 고집한 생산과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품공급에 노력하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는 경영정상화 이후 대관령 목장을 관광단지로 개발해 사업부문별 구조 조정, 수익성 제고를 바탕으로 한 내실경영 등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장남인 전인장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 후 전 명예회장은 월 1~2회 대관령 목장을 방문했으며 독서와 집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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