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일본 군국주의 유령의 실체는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8 17:36

수정 2014.10.25 01:47

[여의도에서] 일본 군국주의 유령의 실체는

한반도에 '일본 군국주의'라는 유령이 출몰했다. 60년 만에 부활한 이 유령의 실체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전쟁을 수행하고 주변국들의 분쟁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미뤄 동북아지역에 '신제국주의'의 패권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이 60년 만에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했다. 평화헌법을 고쳐 그들의 DNA 속에 각인된 '제국'의 이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의 밀월관계가 깊어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동북아 주도권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최근 '아시아·태평양 귀환 정책'을 추진 중인 미국은 이 지역의 세력균형을 위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해상으로 진출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국주의를 용인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동북아 정세의 세력판도가 급속히 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복잡한 지정학적 방정식에 대응할 만한 외교적 전략과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 하면서 자정학적 요충지로서의 '균형자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악화와 '대중 경제의존도' 및 '대미 안보의존도'라는 진영외교틀에 갇힌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내놓을 카드는 무척 제한적이다. 비교적 '쉬운 외교'에 치중돼 있는 현 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주도권 확보 실패에 따른 강대국 논리에 휘말리는 운명을 겪을 위험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방예산이 세계 6위 규모인 일본이 동북아 정세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변모했는데도 정부는 일본과의 대화와 협상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만 바라보는 편향되고 경직된 동맹 중심 외교정책의 한계다. 어쩌면 '중화적 세계관'만을 모든 지식의 근본으로 인식했던 조선시대 외교정책의 연장선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국이라는 한정된 대상만을 바라볼 당시 일본은 '난학'이라는 새로운 텍스트를 놓고 아시아를 넘는 자기만의 패권적 질서에 전력질주했다. 난학은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통해 다져진 새로운 인식의 사조다. 일본은 난학을 통해 서양 선진문물을 전방위적으로 흡수하며 제국을 향한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은 유럽 및 동남아시아-중국-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광대한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군사적·경제적 대국으로 가는 토대를 닦았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2차 세계대전까지 강대국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해외 무역 네트워크를 통한 물적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제국의 발톱을 숨겨가며 오랫동안 축적한 외교적 역량과 안목도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우리와 세계를 바라보는 이 같은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연유할까. 바로 지리적 상상력이다.

최근 발간된 '난학의 세계사'에서는 "근대 일본은 군사전략과 지리학적 지식의 결합을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제국으로 나아갔다"고 서술한다. 일본은 유럽이 각축전을 벌이던 열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제국적 욕망을 표출했고, 이는 근대 일본의 이념적 토대가 됐다. 이들이 꿈꿔왔던 상상의 공동체가 바로 '대동아'라는 지리적 상상력이다.


자신만의 상상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일본의 노림수가 결국 군국주의로 표출된 이상 우리도 이에 맞는 외교전략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꽉 막혀있던 '남북관계 개선' 카드를 과감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외교의 고질병인 한·중, 한·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동북아 외교 주도권을 확보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카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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