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5 16:53

수정 2014.10.24 17:09

[차장칼럼]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되는 집안은 근심이 없고 건강하며 화목한 것이 비슷하지만 안되는 집은 문제가 애정이든 금전이든 자녀든 천차만별의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얘기다.

진화 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총, 균, 쇠'에서 이 정의를 좀 더 진화시켰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또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른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했다. 그는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금융권 임직원들의 의식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대출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원래 책임지기 싫어하는 분야라 그렇다"고 거들었다는 후문이다.

문득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떠오른다. 그리고 셀 수 없는 물음표가 던져진다. 금융권 보신주의만 사라지면 경제가 살아날까. 아니 금융권 보신주의가 왜 생겼는지 아는 걸까. 다양한 내수부진의 원인 가운데 왜 하필 금융권일까. 최근 내놓은 금융규제 개혁방안은 정말 완벽할까. 대통령 말 한마디로 금융권이 바뀔 수 있을까.

여전한 금융규제와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 어떤 일이 성공을 거두긴 힘들다. 아니 공염불이다. 외환위기, 신용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를 겪었던 금융권이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도는 더 세졌고, 간섭도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보신주의'라는 채찍으로 금융권을 때린다. 옭아맨 규제는 풀지 않고 뛰어 보라고 한다. 마치 가벼운 운동복을 입은 외국계 대형 금융사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달리기 시합을 해보라는 격이다.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금융권의 한 전문가는 "그동안 정부는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를 강조해 왔고, 관치금융이 금융기관의 역할을 공공성 부문에 기울게 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를 낮추는 게 아니라 적정한 리스크 속에서 수익을 내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는 리스크를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그런데 금융 보신주의라니. 오른쪽 방향으로 표시된 이정표를 갑자기 왼쪽으로 다시 꽂고 그 길을 따르라는 격이 아닌가.

금융당국의 감독방식 자체부터 바뀌어야 한다.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제고에 올인하는 정책을 금융권 자율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보신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 뛰쳐나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기차에 뛰어든다.

어느 조건 하나만 만족시킨다고 행복이나 성공이 허락되지 않는다.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가 성공하려면 보신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 하나하나 제거해야 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처럼.

sdpark@fnnews.com 박승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