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도수 12.5도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 '백세주'. 누룩, 구기자, 오미자, 홍삼, 산수유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는 이 술의 원료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백미, 즉 설갱미다. 이름이 꽤 독특하다 싶지만 눈 설(雪)과 메벼(멥쌀) 갱(粳)을 쓴 것을 보면 이 쌀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눈처럼 흰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 쌀은 백세주의 주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쌀이 산업을 만나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설갱미, 쌀 산업화 '대표주자'
설갱미는 멥쌀의 한 종류다.
설갱미가 전통주 양조용으로 쓰이는 이유다. 2001년 당시 개발돼 2003년에 보급을 시작한 설갱미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8년부터다.
국순당이 백세주를 만드는데 설갱미를 전용으로 쓰면서다. 전통주를 제조할 때 생쌀발효법을 쓰고 있는 국순당의 경우 설갱미가 자사의 술 제조에 탁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술 제조회사 입장에선 원료(설갱미)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계약재배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오세관 농업연구사는 "계약재배는 물량의 안정적 공급, 고른 품질, 농가 소득 향상 등의 장점이 있다"면서 "농진청은 종자 보급과 재배기술지원을 통해 생산관리를 해 농가가 고른 품질의 쌀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순당은 계약재배 조건으로 당시 일반 쌀의 정부수매가(40㎏당 5만5000~5만6000원)보다 평균 1만원가량 높은 가격에 설갱미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농가소득은 기존보다 연간 6억원가량이 더 향상됐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계약재배 결과 설갱미의 재배면적은 한때 430ha까지 늘어났고, 지금은 평균 370ha가량이 재배되고 있다.
국순당은 2010년부터 쌀을 원료로 하는 모든 제품을 설갱미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농가계약생산을 통해 매년 2400t 정도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백세주, 자양백세주, 고시레막걸리 등 8종의 제품을 개발했다.
이처럼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비단 설갱미뿐만 아니다. 밥맛이 좋기로 소문난 '삼광'과 현미용으로 제격인 '큰눈'의 경우 벤처기업인 미실란과 공동으로 브랜드를 개발, 2010년과 2011년에 상표를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사례다.
특히 이들 쌀은 양질의 발아현미를 위해 친환경 유기농재배가 필수적이었고 이 때문에 계약재배를 선택해야 했다.
물론 친환경 생산 조건이었기 때문에 계약재배 단가는 일반 쌀보다 1만7000원에서 최고 2만5000원 높았다.
이런 결과 벤처기업인 미실란은 초기인 2007년 당시 5000만원이었던 매출이 5년이 지나선 12억원가량으로 크게 향상됐다.
오세관 연구사는 "현재는 삼광벼를 활용해 빵을 제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면서 "삼광벼는 밀이나 보리에 있는 글루텐이 함유돼 있지 않지만 제조 과정에서나 식감, 모양이 더 뛰어나 쌀을 원료로 하는 빵 보급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쌀=밥+α
쌀은 주식 외에도 특별한 무엇인가가 더 있다. 식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다이어트 효과가 있고 성장촉진, 혈액순환 개선, 기억력 증진 등에도 탁월하다는 분석이다.
쌀은 또 의약용으로도 활용된다. 쌀에 함유돼 있는 약리 성분을 강화하거나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해 질환의 치료 목적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또 일반쌀의 표면에 베타카로틴이나 키토산, 셀레늄을 코팅할 경우 쌀 이상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와 함께 현미에 있는 성분을 활용하면 보습, 항노화, 미백화장품뿐만 아니라 전분은 바이오 플라스틱 등 산업소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쌀엔 밥뿐만 아니라 플러스 알파(α)가 있는 셈이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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