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유가족들이 풀어야 한다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칼럼] 유가족들이 풀어야 한다

여와 야가 따로 없었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았다. 영호남 지역갈등도, 세대갈등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모두가 함께 아파하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사고를 대하는 우리 모두가 그랬다. 희생자들은 우리의 아이들이었고 우리의 가족이었다. 눈앞에서 그들이 속절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트라우마는 유가족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무력감, 허탈감, 죄책감에 휩싸여 웃고 떠드는 것마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여전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국가를 개조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들이 모였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국가혁신의 계기가 주어진 듯했다.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패사슬과 관피아로 상징되는 적폐를 걷어낼 수 있는 기회일 듯했다. 있어서는 안 되는 불행이지만 잘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과거 어떤 사건이나 사고도 이처럼 국민의 성원과 에너지를 한곳에 모은 일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국민적 에너지와 성원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마음 한뜻으로 세월호 유족들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던 열기를 느낄 수 있는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 속에 서서히 함께 침몰해가는 한국호만이 을씨년스럽게 부각될 뿐이다. 어느 새 여와 야가 싸우고 보수와 진보가 드잡이를 하고 영남과 호남이 대립하는 옛날 구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문제와 갈등을 슬기롭게 풀기는 고사하고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의 민낯 역시 낯설지 않다. 모두가 모두를 향해 삿대질하는 가운데 국가혁신은커녕 당장 필요한 개혁조차 힘겨워 보인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비난하고 비판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여당도 야당도 정부도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미숙한 정치력도 아쉽다. 청와대 문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박근혜 대통령이 맞아들여 위로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지나간 마당에 부질없는 얘기지만 어쨌든 지금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세월호 유가족들만이 가지고 있다.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아닌 세월호 당사자들만이 꽉 막힌 대한민국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다. 여야의 대표가 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에 따르면 최장 1년9개월까지 120명의 조사인력을 동원한 조사위원회가 활동할 수 있다. 조사가 미진하면 90일까지 특검 수사를 할 수 있다. 1차가 미흡하면 2차 특검도 가능하다. 특별검사 후보도 사실상 유가족과 야당의 뜻에 따라 추천할 수밖에 없다. 과거 어떤 사건에서도 이런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바탕은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국민적 성원을 무력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시기다. 단식농성과 정치투쟁이 일부 지지층의 구미에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온 국민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일을 한갓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행태에 분노하고 실망하는 말없는 다수의 국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행인 것은 여당과 유가족들이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여당과 가족들이 만난다고 한다. 미흡하지만 국가를 생각하는 대승적 견지에서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발표가 있다면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가족들을 의식하면 이제는 더욱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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