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차례(茶禮)란 원래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한다. 신라시대에 충담사가 매년 중삼(重三)과 중구(重九)에 차를 끓여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팔관회 연회나, 경령전(景靈殿)에서 설, 단오, 추석, 중구에 차를 올렸다고 한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종의선사(鍾義禪師)의 제사에 차와 과일을 올렸다"라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및 <고려사(高麗史)> 같은 역사서와 <주자가례(朱子家禮)>, <가례집람(家禮輯覽)>, <사례편람(四禮便覽)> 같은 예서에도 '차례'라고 명명된 것은 없다.
다만 <주자가례> 망참의(望參儀)에 보름에는 사당에 술을 쓰지 않고 차만 올리는 예가 있다. <주자가례>를 널리 썼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사당이나 영당(影堂)에서 차를 올리며 행하는 예를 차례라고 명명한 것이 그 시초라고 보는 것이 현재의 해석이다.
실제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일기(草澗日記)>를 보면 매월 초하루나 보름, 명절에 사당에서 차례를 지낸 행차례(行茶禮)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때 새벽 사당에 단지 국수와 떡을 차려놓고서 술 한 잔을 올렸다고 한다. 현대의 차례상과는 차이가 크다.
조선 후기에 오면 기제(忌祭)와 묘제(墓祭)가 사시제(四時祭)보다 중시되고, 차례가 사시제를 대신해서 사당에서 설과 추석, 동지, 단오 등에 행해짐에 따라 차례상도 기제상에 준하여 차리되 밥과 국[飯羹] 대신에 시절음식을 올렸다.
일제강점기엔 1935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정한 의례준칙(儀禮準則)에 의해 단지 조(祖), 부(父) 2대에만 한하여 기일에 지내는 기제와 일년에 한 번 지내는 묘제만 제례로 통일됐고, 1939년에는 오랜 차례 관행에 의해 기제와 묘제 이외에 정월 원조(元朝) 및 팔월 추석에만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1969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준칙에도 의례준칙에 의해 2대를 봉사하는 기제와 함께 차례는 그 대상과 장소와 참례자의 범위를 기제에 준하게 하되, 양력 1월 1일 아침에 떡국으로 밥을 대신할 수 있게 한 연시제(年始祭)와 추석에 떡(송편)으로 지내는 절사(節祀)로 통일됐다.
1999년에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에 의해 설(음력 1월 1일)과 추석(음력 8월 15일)이 명절차례로 정해졌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 차례 관행은 설과 추석에 성묘와 함께 행해지고 있으나, 지역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정월대보름, 단오, 중구, 동지에 약밥, 팥죽과 같은 시절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고 있다.
옛날처럼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이 항상 집에 계신 듯 계절의 변화와 함께 집안의 일상사를 고하는 마음자세로 차례를 지냄으로써 조상의 은덕을 되새겨보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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