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전자는 3·4분기 시장 컨센서스대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이는 예견된 실적 부진이다. 더 큰 문제는 당분간 실적 모멘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7일 발행된 A증권사에서 투자에 참고하라는 목적으로 작성한 기업 분석보고서 가운데 한 문장이다. 짐짓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참고해 투자에 나서는 개인투자자로선 '독해'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난무하는 '외래어' 탓이다.
이는 비단 A증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 회원사로 등록된 62개 증권사 가운데 투자자들을 위한 보고서를 발행하는 곳이라면 모두 하나같이 이 같은 외래어를 무비판적으로 남용하고 있다. 이들이 남발하는 외래어에는 특히 한자와 영어가 유독 많다. 이조차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하회(下廻)' '상회(上廻)' '호조세(好調勢)' 등이다. '코스피 지수가 외국인 매도세로 인해 2000선을 하회했다'는 식으로 쓴다. 그나마 하회, 상회, 호조세 등은 독해까진 필요하지 않지만 '견조(堅調)'와 같은 단어를 마주하면 도통 무슨 의미인지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견조는 시세가 오르는 경향을 표현하는 말로 이 한자는 일본에서도 '겐조(けん-ちょう)'라는 발음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증권가의 '은어'인 셈이다. 왜 이런 단어를 쓰게 됐을까. 업계에 오랜 시간 몸담은 이들은 이 같은 은어의 태생에 대해 과거 1980년대 일본 증권사의 보고서를 그대로 베끼기를 하면서 남은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한자보다도 영어가 더욱 남발되고 있다. '어닝(earning)' '밸류에이션(valuation)' '리스크(risk)' '컨센서스(consensus)' 등은 증권사 보고서에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어닝은 이익, 밸류에이션은 가치, 리스크는 위험으로 바꿔 읽는다면 독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증권가의 연구원들은 이런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선배들이 일본 보고서를 참고했다면 2000년대 이후 입사한 젊은 연구원들은 외국계 특히 미국 보고서를 보면서 용어 또한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고 있다"며 "한자나 영어가 증권가에서 끊이지 않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해외 금융기업들을 모방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애초부터 증권사 보고서의 독자 대상이 개인투자자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기관투자가를 고려해 작성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연구원들은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가 자신의 보고서를 근거로 주식을 매매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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