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3) 상처 받은 사람들이 다시 웃을 수 있게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3) 상처 받은 사람들이 다시 웃을 수 있게

사건이 발생한 '그날'은 지나갔지만 범죄 피해자의 아픔은 여전하다. 사건 재경험, 악몽, 과민 등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장애로 시달리곤 한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방 안에 틀어박혀 일상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범죄피해의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피해자를 지켜보며 재판이라는 긴 싸움을 준비하는 가족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사건 수사와 공판과정에서 진술하다가 사건을 재경험하고 가해자 처벌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15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5대 강력범죄(살인 및 강도.폭력.성폭력.약취유인(유괴).방화)는 41만2000여건으로 2012년(22만4200여건)에 비해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나 대응방안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법무부 산하 서울스마일센터를 찾아 우리가 어떻게 범죄 피해자들을 감싸안아야 하는지를 들어봤다.

■'그날'의 아픔을 치료한다

"영화 '해적'이 재밌다면서요? 폭력적이진 않죠?"

지난 1일 서울 풍납동 스마일센터에서 만난 이명희 사례지원팀장(33·여)은 "좀 이따가 스마일센터를 찾은 피해자 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며 이렇게 물었다.

모두가 범죄 피해자들이라 영화를 고르는 데도 신중할 수밖에 없단다. 이 팀장은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선정적이거나 피가 보인다거나 총을 쏘는 등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꼭 제외한다"며 "인터넷으로 영화 정보를 얻고 사전 모니터링을 일일이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개천절 황금연휴를 앞두고 있었다. 추석이 보름여 지난 때였다. 범죄 피해자들로서는 명절이나 연휴가 더욱 힘들 터였다. 이씨는 "명절이나 기념일에 가족의 빈 자리를 많이 느끼고 친척으로부터 '좀 어떠냐'와 같은 말을 듣는 자체를 힘들어 하더라"며 "지난 명절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며 멀리 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의 접촉을 피해 조심스레 들어간 센터는 교회를 개조한 지상 3층 건물이었다. 상담실, 어린이를 위한 놀이치료실, 집단심리치료실, 세미나실, 대강당, 주방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3층에는 최대 2주까지 머무를 수 있는 생활공간도 마련됐다. 아기자기한 장식물로 꾸며진 이 건물은 아파트 단지와 가깝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동네 주민이 지나가다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층 복도 벽에는 검정 도화지에 큰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제목은 '동행'이다. 범죄 피해자 6명이 각자 한 부분씩을 맡아 하나의 커다란 나무그림을 완성한 것이었다. 윤성우 부센터장(36·여)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외상을 받으면 한없이 무너진다고 해야 하나, 피해자 분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며 "'여기 아니면 이야기를 할 곳이 없다'는 이들을 보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3) 상처 받은 사람들이 다시 웃을 수 있게

■트라우마의 언어화가 필수

센터 관계자들은 "같은 사건이라도 범죄피해자의 증상과 치료방법, 회복기간이 모두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나 성당 등에 나가다 중단한 사람도 있다. 또 증상이 롤러코스터처럼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되기도 하고, 범죄 충격으로 기억을 일부 잃었다가 우연히 피의자와 닮은 사람과 마주쳐 증상이 재발되기도 한다. 10년 전 겪은 사건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센터는 상담치료를 대부분 일대 일로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범죄 트라우마와 맞닥뜨리고 이를 '언어화'하는 것은 필수다. 김태경 센터장(42·여)은 "트라우마를 처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치료는 겉돌게 돼 있다"며 "치료과정에서 사건을 떠올려야 하는데 이를 준비하는 데만 2년 정도 걸리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건을 말로 조금씩 풀어가는 언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지를 훈련받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원인(기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더 건강한 것"이라는 게 김 센터장의 말이다. 피해자들은 '거길 가지 말았어야 돼, 하지 말았어야 해, 내가 뭘 잘못했지, 거길 왜 갔지'라며 자신을 탓하다가도 원인을 생각하다보면 대안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다만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별다른 원인이 없어 '조심해도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키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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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디 말보다 옆에 있어주기

"피해자들이 '선생님이 알아요'라고 물을 때면 '당신만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피해자에게 '괜찮아'라고 묻거나 '네 마음을 이해한다'라는 말은 금기어예요."

김 센터장은 일반인의 경우 범죄피해자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제 괜찮다' '죽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니' 등등 '섣부른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만큼 자제해 달라는 얘기다. 그는 "'괜찮아'라며 등을 두드리는 것보다 옆에서 그와 함께 호흡하면서 '세상에는 좋은 사람,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레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곁에 머물면서 밥을 먹었는지 살피고 주변을 청소하는 등 '조용한 관심'도 매우 중요하다.

김 센터장은 "가끔 피해자의 불운이 나에게 옮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있더라"며 "피해자 자신도 '나는 운 없는 사람' '내가 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면 피하거나 비난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등 오해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가해자가 범행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인데 이를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강력범죄 피해가 왜 발생하며 어떤 후유증을 낳는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성교육처럼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또 "피해자 가족들은 기사를 일부러 보지 않고 궁금해하면서도 막상 언론에 나오면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며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면서 "진정한 관심은 필요하지만 '어쩌다 저런 일을 당했대'와 같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건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건 직후 주변정리를 하다가 정작 피해자에게 소홀히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온통 혈흔이 묻어있는 옷을 비닐에 넣은 채로 유품을 돌려주면 가족들은 두고두고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며 "경찰이 살인이나 유괴 등 사건 사진을 보여주려면 심리학자를 대동해 상태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mail protected]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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