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무대에서 문학의 향기가 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5 18:00

수정 2014.10.15 18:00

안톤 체호프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잉여인간 이바노프'
안톤 체호프의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잉여인간 이바노프'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명작이기에 명작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희곡이 수세기 동안 무대에 오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올해는 이 두 문호의 탄생 450주년과 서거 110주년을 기념해 이들의 작품이 잇달아 공연되고 있다. 원작 그대로도 묵직한 울림이 있고 장르를 바꾸거나 각색된 작품들은 새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을 설레게 만든다. 숱하게 변주돼온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오페라 연극'과 '세미 뮤지컬'로 새 옷을 입었다. 숨겨진 작품들을 발굴해 그간 무겁고 어려웠던 체호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연극계의 노력도 돋보인다.

■셰익스피어, 새로운 장르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같은 명대사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오페라 연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로 탄생 450주년 기념 무대에 오른다.


오페라와 연극의 장점만 뽑아 관객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면서 극적 재미를 극대화한다는 게 특징이다. 원작 '햄릿'에 오페라 아리아를 삽입해 연기로 설득력을 유지하면서 노래로 절정의 감동을 터뜨린다. 프랑스 그랜드오페라의 대표 작곡가 앙브루아즈 토마의 '햄릿' 아리아가 삽입된다. 세계적 오페라 가수 나탈리 드세이가 부른 '광란의 아리아'가 유명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독일 정상급 대회인 ARD국제 콩쿠르, 독일가곡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유럽에서 각광 받는 바리톤 김동섭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음악감독은 방송, 뮤지컬 등에서 인정받고 있는 김민수가 맡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연극계에서 활빌하게 활동하는 김나정 작가가 극본을 썼다. 라이브 세션의 연주와 함께 임병욱 지휘자가 이끄는 스칼라합창단의 노래가 극의 화려함을 더한다. 오는 11월 20일~12월 28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 (02)714-2001

남녀가 뒤바뀌는 설정의 영화, 드라마를 비롯해 남장여자나 여장남자가 나오는 연극·뮤지컬의 모티프가 돼 온 '십이야'도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축하하며 새옷을 입었다. '십이야'는 음악성과 문학성을 겸비해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한다. 지난 4일 개막한 '트랜스 십이야'는 남녀가 바뀌는 원작 설정을 한 번 더 비틀었다. 신분과 계급,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충실했던 원작과 달리 '사랑'이라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성 정체성에 대해 열린 가치관을 보여준다. 또 그 가운데서 벌어지는 유쾌한 해프닝들을 120분간 밀도있게 이끌어간다. 익숙한 사랑 노래와 춤을 곁들인 세미 뮤지컬 형식이란 점도 한몫한다. 지난 2004년 초연 때 셰익스피어 희극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센터 K. 3만~4만원. (02)6227-0301
세미뮤지컬 '트랜스십이야'
세미뮤지컬 '트랜스십이야'


■어려운 체호프가 막장 드라마를?

체호프의 작품 중에도 이렇게 유치한 멜로드라마가 있었다니. 안톤 체호프는 어렵다는 오해를 풀어줄 '잉여인간 이바노프'가 그의 서거 110주년 기념작으로 공연된다. 10년 전 '안똔체홉 4대 장막전'으로 동아연극상 연출상과 작품상을 받은 전훈 안똔체홉학회 회장이 이번엔 '안똔체홉 숨겨진 4대 장막전'을 기획했다.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검은 옷의 수도사'와 '숲귀신'에 이은 세번째 공연으로 원작의 제목은 '이바노프'다.

1887년 27세의 체호프는 10일 만에 이 희곡을 완성해 초연하고서 "연극이 내 작품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대 러시아에서도 '막장 드라마'는 대중에게 먹혔다. 지방 농업 부문 관리공무원인 주인공 이바노프를 둘러싼 환경부터 끔찍하다. 불치의 병에 걸린 아내와의 불화, 하는 일 없이 돈만 축내는 친척, 거액의 돈을 빼돌려 잠적한 동료,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이자. 이런 와중에도 치명적 로맨스는 꽃피운다.
지방자치회 의장의 딸인 사샤가 불쌍한 이 남자에 대해 보호본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체호프가 이 작품을 쓴 이유는 계급사회의 몰락과 지식인들의 무기력, 여성해방운동과 상인계급의 부상 등 급변하는 당대 러시아의 세태를 풍자하기 위함이었다지만 21세기의 어느 사회에도 해당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전훈 연출가는 "사회가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막장은 아주 쉽게 펼쳐진다"며 "이바노프의 이야기는 지금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오는 12월 10일까지 대학로 아트시어터 문. 전석 3만원. (02)3676-3676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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