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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art와 함께하는 그림산책] 일렬로 나열된 철제박스에 담긴 철학

도널드 저드 'untitled'
도널드 저드 'untitled'

다양한 색깔로 내부를 채운 철제 박스가 일렬로 줄지어 있다. 언뜻 보면 잘 꾸며진 집이나 카페의 장식장 같다.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박스인 데다가 별다른 장식도 없어 이것이 작품 맞나 싶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20세기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도널드 저드(1928∼1994)의 1992년작 '무제(untitled)'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도널드 저드의 개인전이 1995년 이후 19년 만에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1970~90년대 작품을 집중 소개하는 사실상의 국내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저드는 흔히 '미니멀리스트'로 불렸지만 본인은 이런 규정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이 용어가 지나치게 일반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작업과 철학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저드는 1965년 발표한 한 에세이를 통해 시각예술에서 명확하고 강력한 표현을 생성하는 간결한 오브제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정한 오브제(specific object)'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시에 맞춰 방한한 '도널드 저드 재단'의 이사장이자 작가의 아들인 플래빈 저드도 "아버지는 추상적으로 물질을 표현하기보다 외부세계 자체를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아버지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가구, 건물 등 삶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맥시멀리스트'였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는 예의 1992년작 외에도 둘로 나뉜 알루미늄 튜브를 얹은 빨간 상자 형태의 1991년작, 투명한 보라색으로 도금 처리된 알루미늄으로 만든 길이 6.4m의 1970년작 등 총 14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는 30일까지. (02)735-8449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